영국에서 대중식 선술집인 펍(pup)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평소에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혼자 조용히 쉬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펍에 간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펍에서 TV로 축구를 본다. 간혹 영국 전통 구기종목인 크리켓을 시청하는 펍도 있으나 드물다. 영국사람도 크리켓은 지겹다고 꺼린다. 본격적인 축구시즌인 요즘에는 어느 펍에 들어가든 축구에 몰두해 있는 영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영국은 런던 시내라도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펍이 드물다. 대부분의 펍에서는 수신 상태가 불완전한 14인치 텔레비전 하나가 무표정한 런던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낸다. 맥주잔을 하나씩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축구를 보는 영국인이 사뭇 엄숙하기까지 하다. 아쉬운 장면이 연출되면 혼자 팔짱낀 손으로 코를 어루만지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골이 터지면 잠시 함께 좋아한다. 경기 내내 모든 남자가 축구 해설가가 되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처음 런던에서 펍에 갔을 때 그곳에서 축구를 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가 있는 날, 빨간 티셔츠 입은 사람으로 가득 차는 한국의 호프집에 익숙했던 필자에게 편안한 집을 놔두고 혼자 조용히 작은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러 펍에 온 영국인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러나 런던에서 세 번 이사를 하면서 여러 영국 가정을 들여다보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40인치 이상의 초박형 텔레비전과 5.0채널의 음향 시스템이 필수 혼수품으로 자리잡은 한국과 달리 영국은 1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아직도 보편적이다. 그나마 한 집에 한 대면 충분하다고 느낀단다. 어느 집이나 개별 안테나 없이는 텔레비전을 보기 어렵고, 안테나를 아무리 돌려도 수신 상태가 최악인 경우가 허다하다. 축구를 볼 때 선수의 얼굴은 물론이고 등 번호를 식별할 수 없어도 그러려니 할 정도다. 게다가 SKY라는 유료 채널을 신청하지 않으면 중계가 안되는 경기가 많다. SKY채널을 시청하는 영국 가정은 드물다. 집에서 편히 축구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영국인들이 많은 실정이다.
이들이 가는 곳은 결국 펍이다. 3파운드(한화 5천400원 상당)짜리 맥주 한 잔이면 그나마 편안하게 축구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근영 (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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