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활비 걱정에 항암치료도 포기한 '우리 아빠'

어젯밤, 아빠가 많이 아팠습니다. 숨이 가빠 말도 못하고 배가 아프다며 이리저리 뒹굴기만 했지요. 온몸에서 난 열이 불두덩이 같았습니다. 병원에서 타 온 약 두 봉지를 모두 다 먹었는데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야할 것 같은데 아빠는 자꾸 물수건만 달라고 했지요. 물수건을 손에 쥐고 엎드려 있던 아빠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순간 겁이 났어요. 아빠가 "사내는 울면 안된다."고 했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막 났습니다. 꼭 죽을 것만 같아 보였거든요. 아빠 옆에서 울다 슬며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빠도 옆에서 움크린 채 자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오른쪽 팔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왼쪽 팔로만 절 안아주셨지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얼음을 깎는 기계 옆에서 일을 하다 팔꿈치 밑을 잃었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운이 좋아서 팔만 잃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쪽 팔 밖에 없는 아빠가 싫을 때가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아빠를 '팔 없는 병신' '불구자'라고 놀릴 때면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예전엔 아빠가 학교에 찾아왔을 때 딴 사람이 우리 아빠였으면 하고 바랬지요.

아빠가 병원에서 '폐암' 판정을 받은 건 1주일 전입니다. 허리가 아프다고만 했었는데 그게 암덩어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빠의 병이 암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너무 두려웠습니다. 사실 저는 엄마가 없거든요. 만약 아빠까지 없으면 정말 어떻게 살지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 아빠 말 잘 들으려구요. 그동안 말 안 듣고 PC방에 가서 게임만 하고 몰래 교복도 줄여 입었거든요. 급식을 하지 않는 날엔 아빠가 직접 만들어준 반찬이 맛이 너무 없어서 몰래 버리기도 했습니다. 참 피곤할텐데도 새벽에 일어나 만들어 준 도시락인 것을 잘 아는데도···. 친구들은 엄마가 만든 잡채며 햄, 계란후라이를 싸오는데 저는 매일 달걀말이였거든요.

아빠는 서문시장에서 심부름하는 일을 했습니다. 물건 산 사람들의 짐을 날라주며 1천원, 2천원 씩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IMF 때는 시장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고 심부름 일을 시키지 않아 돈을 조금밖에 못 벌었대요. 그 때부터 아빠가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사실 5살 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엄마는 참 착하고 이뻤다는데 어떤 종교를 너무 믿게 돼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 엄마가 참 가끔 보고싶을 때가 있어요.

마음 속으로 약속했습니다. 이제 아빠 말씀 잘 듣고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아빠가 그랬거든요. 제가 말을 잘 들어야 아빠 병이 빨리 낫는다고.

지난 1일 오전 10시쯤 동구 안심동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중학교 1학년인 김상현(가명·14) 군의 아빠 진홍(가명·51) 씨를 만났다. 항암 치료를 받고 난 뒤였던 그는 누나의 간호 속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김 씨의 누나는 "동생이 항암치료라도 제대로 받아야 할텐데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며 "항암치료 한번에 수십 만 원씩 들어가는데 동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어린 아들 끼니 걱정에 동생이 병원비를 아꼈나봐요. 저도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처지라 달리 도와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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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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