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언니들 치맛바람에 신년 스크린 '살랑~'

스크린에 '언니'들이 돌아왔다.

이번 연말 연시에는 유난히 '언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많아진 것.

남자 배우에 비해 티켓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지난해 유독 20,3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많이 개봉됐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개봉 후 보름동안 4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중이다. 90kg가 넘는 거구로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전신 성형에 성공한 뒤 45kg의 몸무게로 나타나자 모든 남자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든다는 이야기. 지상 외모주의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 역시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미자가 연하 꽃미남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 영화가 여성들의 마음을 건드린 부분은 바로 30대 여성의 변변치 않은 일상과 좌절하지 않는 미자의 발랄함. 여성들은 영화를 보면서 내내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으며 배꼽을 잡곤 한다.

연말에 이어 이번 주에도 30대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개봉한다.

고소영 주연의 '언니가 간다'는 고소영이 도도한 도시 여성에서 푼수 노처녀로 연기 변신한 영화. 서른 넘도록 남자 친구 하나 없는데다 의상 디자인실에서 잡일을 맡고 있는 나정주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연애도, 일도 별 볼일 없는 30대 여성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 어느 날 자신을 첫사랑이라고 부르는 멋진 남자 동창생을 만난 것. 돈까지 잘 버는 그 동창생 오태훈과 연결될 수 있을까. 주인공 나정주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학창시절인 1994년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음 직한 판타지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오래된 정원'에서는 염정아가 순수한 사랑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감독 임상수가 바라보는 1980년대 풍경을 현우와 윤희 커플을 통해 엮어내는 이 영화는 1980년 군부독재시절에서 출발한다. 도피생활을 하던 현우는 자신을 숨겨줄 사람으로 당차고 씩씩한 여성 한윤희를 소개받는다. 한적한 갈뫼에서 윤희와 현우는 6개월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서울에서 다른 동료들이 모두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은 현우는 갈뫼를 떠나야 한다. 윤희는 그런 현우를 붙잡지 못한다. 17년 후, 교도소에서 출소한 현우는 다시 갈뫼를 찾아가 이미 세상을 떠난 윤희의 일기와 그림을 보며 회상에 잠긴다.

아쉬운 것은 이 모든 영화들이 여성의 판타지가 남성에 귀결된다는 점이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미자는 꽃미남 연하남 현우에게 모든 것을 걸고, '언니가 간다'의 나정주 또한 멋지게 변신한 동창생 오태훈과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오래된 정원'의 윤희는 짧은 사랑을 나눈 남자를 기다리며 병들어 죽고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 들기 위해 전신성형을 감행한다. 스크린 밖에서 진화하고 있는 여성들이 스크린 안에선 오히려 캐릭터가 오히려 후퇴한다는 느낌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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