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꿈 나의 삶, 김수학] ⑮세금은 무서운 것?

1978년 12월, 나는 뜻밖에 경상북도지사에서 국세청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파격이었다.

당시 국세행정의 정황은 1977년 7월에 시행된 '부가가치세제'에 대한 회의적 여론으로 들끓고 있었다. 갑자기 시행된 부가가치세제는 준비기간이 짧았고 제대로 홍보도 되지 않은 상태여서 새로운 명목으로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데는 분명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나는 내무관료 외에 한 일이 없고 더구나 지방에서나 중앙에서 국세행정을 직접 다루어 본 일은 없었다. 그래서 재임기간 동안이나마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악착스럽게 淸儉(청검)과 晴耕雨讀(청경우독)하던 선인들의 슬기에 젖어 보려고 애썼다.

그동안 지방행정기관에서 지역주민과 항상 얼굴을 맞대면서 그들과 생각을 함께 해왔던 나는 우리 세정이 무엇보다 권위적이고 규제중심으로부터 벗어나야 되는 때임을 절감하였다.

그동안 세무행정이 납세편의보다 행정편의 위주로 집행되고 또한 그 속성상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많은 마찰이 있어왔는데 그 가까운 예의 하나가 부가가치세 영수증 단속이었다.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부터 성급한 정착을 위하여 영수증수수 실태점검을 강력히 실시하였다. 영수증 수수가 중심을 이루는 부가가치세가 실시되고 보니 앞뒤 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이면 되는 것으로 쉽게 알았던 것 같다.

영수증 수수 단속이 일단은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물의를 빚었다. 단속에 나선 세무공무원이 술집 앞에 지켜 서 있다가 나오는 손님을 붙들고 "영수증 받았느냐"고 물어 단속하는 것이 가장 초보적인 방법이었으나 이 경우 의외의 봉변도 감수해야 했다. 취기가 도도한 취객으로부터 "남이야 받든 안 받든 무슨 상관인가"하는 건 그래도 고운 편이고 폭언이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밖에도 취객이 술값 시비를 벌이다 신고하는 경우, 동업자끼리 모함 등 건전한 시민정신을 저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세금을 무섭게 생각한다는 데에 있었다. 재임 시, 어느 날인가 단골로 다니던 '국시집'에 식사를 하러 가니 평소 주방에서 일하던 주인장이 한쪽 팔을 크게 다쳤는지 붕대를 하고 나와 인사했다. 연유를 들어보니 어제 세무서로부터 부가세 입회조사가 나오자 놀라서 뜨거운 국수 국물을 그만 팔에 쏟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를 팔았는지의 수치가 찍히는 '금전등록기'를 아예 한복 치마 속에 넣고 앉은 채 며칠을 버티는 바람에 세무직원들을 애먹였던 어느 유명 냉면집 여주인도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부가가치세에 흡수되었으나 당시의 지방세인 유흥음식세의 절세를 위하여 '따로국밥'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적발되면 벌금 50만원이나 영업정지 2주. 강력행정의 한 표본으로 이 같은 지나친 단속의 발상은 영수증 주고받기의 당위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중벌제일주의로 치달은 결과인데, 과연 이 방법이 옳았느냐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당시 세정의 민주화를 우선적인 집행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사회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납세도의를 기초로 한 조세정의의 실현 없이는 더 이상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많은 고심 끝에 국민이 세정을 이해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세무상담실을 설치하고「세금을 아는 주간」을 만들어 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넓혀나갔다.

김수학 전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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