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지역 과거사 진상규명 신청 '봇물'

어릴 때부터 '네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A씨(74). 6·25 전쟁이 발발 한 1950년 7월 어느날, A씨의 아버지(당시 26세)는 달성군 가창에서 경찰·군·우익단체에 의해 학살됐다. 이른바 '보도연맹 집단 학살 사건'의 희생자. 어느덧 고희를 넘긴 A씨는 지난해 정부의 과거사 정리 발표에 힘입어 56년만에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긴 여정에 올랐다. 어릴적 동네를 찾아가 당시 목격자를 수소문해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골짜기에서 아버지가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아직 살아 있는 당시 주민들에게 트럭에 한가득 실려 온 다른 민간인 학살 사실까지 전해 들었다. A씨는 진상 규명 접수를 통해 "내 아버지가 학살당할 만큼 잘못한 일을 했는지 더 정확히 알려 달라."며 "아버지 제사일을 바로잡게 돌아 가신 날짜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세기를 돌아 잊혀진 역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거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등 정부의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 조사(11가지)가 시작되면서 일제 시대,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의 폭력, 학살, 의문사 등 왜곡되거나 은폐된 사건의 사실 규명 신청이 쇄도한 것. 이 중 정부가 2005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대구시와 경북도를 통해 접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건수는 대구 193건, 경북 530건으로 6·25 당시 달성 가창, 문경 석달, 경산, 청도 등의 보도연맹 집단 학살 사건만 대구 139건, 경북 346건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과거사 관련 진상규명 조사 11가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지난 2005년, 2006년 2차례로 나눠 실시한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으로 대구시와 경북도에 따르면 대구 5천423건. 경북 2만3천736건이다.

대구시, 경북도 관계자들은 "피해 보상을 떠나 한맺힌 원혼을 풀 수 있도록 유골이라도 찾아달라는 호소가 더 많았다."며 "전국적으로 진상 규명 신청이 너무 쇄도해 중앙 심의위원회에서 진실을 밝혀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보도연맹 집단학살사건=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좌익으로 활동했거나 여지가 있는 사람, 심지어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사람까지 마구 끌어들여 보도 연맹을 조직했지만 6·25 전쟁 발발 후 군과 경찰에 의해 상당수가 살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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