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 못 살겠다. '우리'에게도 따뜻한 겨울을 날 권리가 있다."
주거난방 기본권 찾기 운동이 불붙고 있다.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이 겨울만 되면 비싼 난방유(등유)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난방유에 대한 과중한 세금을 없애 서민 가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시민 운동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
◆왜 주거난방 기본권인가
대구 동구 신암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이모(33) 씨는 겨울만 되면 난방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24평 형에 사는 네 식구의 겨울 난방비로 월 20만 원 넘게 지출하고 있기 때문.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마당에 월급의 10분의 1이 넘는 돈이 난방비로 나간다. 이씨는 "올 겨울엔 3개 방 기름 보일러를 끄고 거실만 틀어 놓고 있는 지경"이라며 "멀쩡한 방을 놔 두고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는 영구 임대 아파트 주민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 중앙집중식 난방 시스템으로 무조건 기름을 때야 하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비싼 난방비 걱정을 늘 안고 산다. 달서구 한 영구임대아파트의 신춘옥 부녀회장은 "전기료를 포함한 12평 난방비가 월 17만 원이 넘는다."며 "도시가스를 쓰는 옆 아파트 33평형 수준과 맞먹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기름값을 아끼려다 화재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18일 경북 영덕과 대구 북구 산격동 주택에선 각각 전기장판과 전기난로 과열로 보이는 불이 나 배모(62) 씨와 이모(77) 씨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이와 관련, 최형우 아파트 생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은 "비싼 기름값 때문에 전열기에 의존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이런 죽음들은 주거난방기본권 침해로 인한 사회적 타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제 유가 급등과 높은 세금으로 난방유를 쓰는 서민들의 월 평균 난방비 지출은 22만3천 원 선.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10분의 1, 저소득층 소득의 4분의 1에 이를 정도다.
◆주거난방 기본권 바로 세우기
이처럼 서민 난방비 부담이 문제가 되자 주거난방 기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전국 최초의 시민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등 대구 9개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대구시당이 '서민 주거난방 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대책위'를 발족한 것.
지난 3개월간 저소득층 난방 대책을 촉구하는 거리캠페인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활동 등을 벌여 온 대책위는 지난 8일 민주노동당 민생특위 노희찬 위원장과 간담회를 갖는 등 정부 차원의 관련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용태 집행위원장은 "대구 전체 가구 수의 36%가 난방유를 쓰고 있다."며 "대구시,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에 저소득층 난방 실태, 지원 대책 등을 질의한 데 이어 민주노동과 주거난방기본권 실현을 위한 입법안 상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바로 세우나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이 지난해 산업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구조는 소득이 높을수록 값싼 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득역진적 체계다. 월소득 100만 원 이하 가구가 연간 8천390 Mcal를 사용하면서 70만 원의 난방용 에너지비용을 지출하는데 반해 월소득 500만 원 이상 가구는 연간 9천174Mcal를 쓰면서 62만 원의 비용만 들이고 있다. 이 같은 에너지 소득 역진 현상은 난방유 세금에 근본 원인이 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9월 기준으로 ℓ당 등유에 붙는 특소세, 교육세, 부과금, 부가세, 기타 세금은 220.4원으로, 1천kcal당 세액이 25.3원에 달해 LNG(액화천연가스) 3.8원의 6.7배에 이르고 있는 것. OECD 국가 가운데 서민 난방용 연료에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의 경우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서민용 난방용 연료에는 소비세 5%만 부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난방기본권 대책위는 난방유에 부과된 각종 세금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 및 대구시가 소득, 생활 환경별 난방 실태를 조사, 겨울철 주거난방보조비 지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산자부는 서민들로부터 연간 8천400억 원의 난방유 세금을 거둬고 있다."며 "비싼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난방을 포기하거나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우 겨울을 나는 서민들을 한 번 돌아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월부터 ℓ당 등유 특소세를 20원 인하했다."며 "앞으로 재경부와 협의해 난방용 연료의 서민 가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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