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헌, 시기적으로 명분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은 꺼내자마자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각 언론사가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헌은 다음 정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이다. 조사에 따라 63~69%가 그런 입장이며, 어떤 조사에서는 72%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봤다. 달리 말하면 대선이 코앞인 시점에서 불쑥 개헌을 들고 나온 것은 불순한 意圖(의도)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어제 담화를 들으면서 머릿속에는 임기 말년에 정치적 곤경에 빠져 있는 대통령의 처지부터 떠올랐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지지율 10%에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으로 힘이 빠지고 여권의 정계 개편에서도 소외당하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그 자신 식물 대통령이라고 신세 한탄할 정도다. 사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꼼수를 띄울 것인가 하고 예견을 하고 있던 터였다. 아무리 대통령은 "어떤 정략적 의도도 없다"고 하지만 국민은 '깜짝 제안'의 꿍꿍이속을 看破(간파)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헌 제안을 私的(사적) 동기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개헌은 국회에서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헌 저지선을 훨씬 넘는 127석의 한나라당이 진작부터 개헌 불가 입장을 밝혔고, 빅3 대선 주자 모두 '개헌 논의는 다음 정권에서'라고 합창을 하고 있다. 어제 당론도 앞으로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숫제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제1야당이 무시하는 개헌이 推動力(추동력)을 얻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명분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서도 "(개헌은)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 대통령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분명히 자신이 앞장서 개헌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랬던 입장이 180도 바뀌어 남은 1년 안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 와서 선거 공약 이행이라는 주장 또한 뚱딴지 같은 소리다. 그럴 마음이었으면 정권 초기부터 정치권과 진지한 개헌 논의를 하고 국민적 共感帶(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시대환경 변화에 따른 개헌의 필요성은 否認(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권력구조만 개편하려는 개헌은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개헌은 다음 정권에서,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법 정신 전반을 손질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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