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작은 승부역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눈과 절경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시간에 길들여지지 않는 철도원이 있었다. 40여 년 전에는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그러나 '수송의 동맥'이라고 썼던 철도원이 있었고, 지금은 역장 남진동(57)씨가 있다. (승부역은 현재 3명의 역무원이 2교대로 1명씩 주'야간 근무한다.)
자동차에서 내려 낙동강 상류의 '출렁다리'를 건넜을 때, 승객하나 없는 플랫폼으로 방송소리가 들렸다. '기차가 5분 후에 들어옵니다. 기차가 5분 후에 들어옵니다.' 서지 않고 지나치는 기차였다. 사람이 있든 없든 안전을 위한 방송이었다.
산골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누구라도 역사 안에 머물고 싶었을 텐데 남진동씨는 취재진을 따라다니며 승부역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 주변의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 일일이 설명했다. 세찬 바람에 약간 늘어질 기미를 보이는 플래카드를 추위에 곱은 손으로 팽팽하게 고쳐 맸다.
중년의 남자라면 꺼릴 커피를 타 주었고, 생각 못했던 사진과 자료도 펼쳐 놓았다. 역무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예전엔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에 가입해 일일이 사진을 올렸는데, 서비스가 중단되는 바람에 찍어 두기만 한다고 했다.
남진동씨는 역무원으로 35년 근무했으며 승부역에 온 지는 2년이 지났다고 했다. 35년이면 습관에 길들여질 법한 세월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세월의 관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화장실은 호텔처럼 깨끗했고, 사무실 바닥에도 먼지 하나 없었다.
산골엔 해가 일찍 떨어지는 법이다. 험한 길을 걱정해 서두느라 메모지 한 장을 두고 떠났다. 승부역으로 전화를 내, '메모지가 거기 있느냐고 묻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출렁다리 앞에 차를 세우고 급하게 내리는데, 역장 남진동씨가 출렁다리 중간쯤에 서 있었다. 출렁다리 앞에는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메모지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멩이로 눌러놓고 역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기껏해야 2,3분 거리지만 갈 길이 급한 취재진을 배려했던 것이다. 다리 이쪽에 서서 큰소리로 '역장님!'을 부르고, 손을 크게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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