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홀로 희망을 품는 아이들이 있다. 또래 친구들이 부모의 따스한 보호 아래 수십만 원의 과외를 받을 때 혼자 묵묵히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있는 아이들. 매일신문사는 2007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특기·적성을 개발, 두각을 보이고 있는 5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부모의 이혼과 폭력, 질병 등으로 인한 가난의 늪을 '내일의 희망'으로 극복하고 있는 '당찬' 아이들이다. 오늘의 슬픔보다 내일의 기쁨을 먼저 생각한다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 본다.
춤 속에서 희망 찾는 김슬기
슬기(16·여)는 한시도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볼펜을 잡은 손은 이내 리듬을 탔고 발도 어느새 스텝을 밟고 있었다. "공부를 할 때면 언제나 머릿속에 음악소리가 맴돌아요." 슬기는 기자가 만난 16일에도 숙제를 마치고 3시간째 댄스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춤에 남다른 감각이 있었던 슬기는 최근 엄마의 반대를 극복하고 '춤'으로 진로를 택했다. 올해 경북예술고등학교 발레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 사실 그동안 슬기에게 참 많은 기회가 찾아왔었다. 슬기가 교회에서 무대 공연하는 것을 본 친구가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서울의 모 기획사로부터 수 차례 가수 제의를 받은 것. 하지만 엄마는 차마 슬기를 서울로 보낼 수 없었다. 사업 실패로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대신해 10년 넘게 월세방을 전전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엄마였지만 슬기를 서울로 보낼 차비조차 없었던 것. 나이트클럽 주방일이며 남의 집 파출부, 구청의 공공근로까지 온갖 고생을 해 온 엄마.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슬기의 가족에겐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차라리 슬기가 공부를 해 주길 바랐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엄마의 염치 없는 바람이었지요." 엄마는 최근에야 슬기 무용 선생님의 설득에 의해 '춤추는' 슬기를 받아들이게 됐다.
슬기 가족은 현재 슬기가 다니는 교회 집사의 배려로 무료로 집을 빌려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집이 너무 낡아 지붕에 균열이 가고 문도 떨어질 판이어서 수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집에 들어올 때 500만 원의 빚을 내 수리를 했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라 수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엄마는 이 집에서마저 나가면 슬기와 동생(15·여)을 데리고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슬기의 등록금 150만 원을 지인의 후원으로 겨우 내고 왔네요.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계속 배워야 할 텐데···." 엄마 옆에서 묵묵히 앉아있던 슬기는 엄마에게 "장학금 받고 다니면 돼. 지금까지 춤 연습도 동영상 보고 준비했잖아."라며 해맑게 웃으며 엄마를 위로했다. 슬기의 미소 속에는 어떤 절망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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