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민영-이찬 커플 사건은 다시 한 번 '가정폭력' 문제를 우리 사회 한가운데 내놓게 만들었다. 결혼식 12일만에 파경이라니…. "우째 이런 일이"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처참하게 망가진 신혼 부부의 모습이었다. 남편에게 맞아 태아가 사산되고, 코뼈가 부러지고 멍든 얼굴로 입원한 아내.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도 피해자라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한때는 사랑해서 결혼식까지 올렸던 남녀가 아닌가. 함박꽃 같던 신혼 부부의 미소는 가짜 미소였고, 그들의 스위트 홈은 돌이킬 수 없는 금이 생긴 거울 꼴이 돼버렸다.
이 사건은 '폭력 사회'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또 하나 자화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는 지금 '폭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 그것도 웬만한 약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독하고 耐性(내성) 강한 병균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 매스컴에는 연일 온갖 종류의 폭력이 오르내리고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언어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아무리 인간 사회가 흉흉할 때라도 禁忌(금기)라는 것이 있어왔다. 더 이상 침해하지 않는 한계선이 그나마 인간 사회의 질서와 건강성을 유지하고 회복시켜 주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마지막 선이 흔들흔들 위태로울 지경에 왔다.
바로 며칠 전, 공중파 TV에 비친 장면들은 "末世(말세)가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했다. 50대의 한 어머니가 중학생 아들에게 마구 두들겨 맞는 장면은 우리를 경악하게 하다 못해 슬프게 했다. 아들의 폭행 정도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 어머니의 몸 곳곳에는 시커멓게 멍자국이 나있었다. 오죽하면 "자식인데도 엄청 두렵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놓을까.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다. 살인을 부르는 가정폭력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알코올 중독 남편의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던 한 아내가 결국 남편을 살해했나 하면 아버지의 상습적 酒醉亂動(주취난동)에 괴로워하던 한 여중생이 아버지를 살해, 졸지에 살인범이 돼버린 그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자못 충격적이다. 이곳 여성 범죄자의 2분의 1이 살인범이며, 그 중 2분의 1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 살해 여성의 83%는 폭력과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남성의 폭력 피해도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에 신고된 남편 학대는 전체 가정 폭력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성들의 경우 여성보다 경찰 신고 등 피해 사실 노출을 훨씬 더 꺼리는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실제 '매 맞는 남편'의 수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무릇 폭력은 한 사람(집단)이 다른 사람(집단)을 지배하는 도구로서 사용돼 왔다. 인간 지배 수단인 폭력이 가정에 들어오는 순간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는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가정폭력이 특히 무서운 것은 '폭력의 순환'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보며 자란 자녀들은 그 자신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아버지의 폭력성을 재연하기 쉽다. 피해자인 아내들 중 상당수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제압되는 어머니를 보며 성장해온 경우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자기 부모들이 보여준 역할 관계를 자신의 가족에게 되풀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어머니를 때리는 중학생 아들의 사례도 알고 보니 또래 아이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것이 이유였다.
폭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또 다른 폭력을 낳기 십상이다. 가족 간 대화 단절, 비뚤어진 가부장적 의식, 잘못된 분노의 해소 등이 가정과 이 사회를 파괴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이민영-이찬 커플 사건에서도 나타나듯 세상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이제 가정폭력은 '내밀한 가정사'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굴러가는 '폭력의 바퀴'를 빨리 멈추게 해야 한다.
全敬玉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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