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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정의 독서일기]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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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대체로 드러나지 않게 '작업'을 합니다. 삶의 커튼 뒤에 숨어서 서서히, 은밀하게. 마치 밤에 이루어진다는 역사처럼. 그러나 때로는 지진이나 전쟁처럼 요란하게 실황중계를 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성년 관객에게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여리고 말랑말랑한 어린 영혼은 갑작스런 충격으로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화석이 되어버리니까요. 죽음만이 삶의 종말이 아닙니다. 지독한 상처는 망각이라는 지우개조차 가 닿지 못하는 깊은 구멍이며 폐허입니다. 이 책은 그 폐허를 정점으로 하여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라헬과 에스타는 이란성 쌍둥입니다. 라헬은 23년 만에 고향 아예메넴으로 돌아옵니다. 라헬은 미국인 남편과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공허한 눈빛을 남편이 견딜 수 없어 했기 때문입니다. 에스타는 오래 전에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라헬의 공허한 눈빛과 에스타의 말없음은 그 색깔이 너무나 닮았습니다. 왜냐하면 운명이 공연실황을 하는 그날의 현장에 그들은 함께 있었으니까요.

외사촌 소피몰의 익사사고가 나던 날, 여덟 살의 쌍둥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그들이 가장 따르는 청년 목수 벨루타가 경찰들에게 무지막지하게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벨루타는 불가촉 천민이지만 아이들의 친구이며 어머니의 연인입니다. 뒤이어 위선과 거짓과 음모의 거대한 바윗덩이가 불가항력의 아이들을 거침없이 찍어누릅니다. 단 하루만에 몇 사람의 삶이 뭉개지고 찢어집니다.

사랑은 법칙도 아니고 관습도 아닐 것입니다. 영혼은 이런 것들에 가둬지지 않고 길들일 수 없을 테니까요. 알고 보면 이것은 하루만의 사건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 즉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얼마나 많이 사랑해야 하는지를 정한 법칙'이 만들어진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귀한 신분과 미천한 신분. 불가촉 천민은 가촉민이 만지는 것에는 어떤 것에도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그 이상한 법칙. 쌍둥이 집안의 불행은 그 법칙을 위반한 벌이었습니다.

역사와 운명의 공연에는 조연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비정한 하수인들 말입니다. 비개인적인 감정으로도 그들은 얼마든지 잔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두려움 때문에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남자가 여자에게,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문명이 자연에게 가하는 폭력은 역설적이게도 독점과 지배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한편의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저자는 더 이상 소설은 쓰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 탓일까요? 대신 세상의 온갖 야만과 잔인함, 그리고 권력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을 호소하는 글을 쓰며 그것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든 약자의 편에서 말입니다. 그야말로 '작은 것들의 신'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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