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전 4050] ③빙벽타기

'1년간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1월초 '소한(小寒)추위'가 반짝 찾아오면서 경북 청송군 부남면 얼음골과 의성군 봉양면에는 거대한 인공의 얼음폭포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겨울 한 철에만 즐길 수 있는 빙벽등반 시즌이 돌아온 것. 때맞춰 20, 30대도 힘든 빙벽등반에 도전하는 40,50대 클라이머들이 늘어나고 있다.

빙벽등반은 암벽등반과 사촌 간처럼 비슷하다. 하지만 바위와 얼음이라는 차이 때문에라도 빙벽등반에는 한 층 더 세심한 주의와 기술이 요구된다. 추위와 맞서기 때문에 암벽보다 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난 14일 대구등산학교 동계반 교육생 10여명이 얼음골 빙벽을 찾았다. 이들 대부분 40~50대. 빙벽에 바짝 붙어서 계곡을 치고 나가는 찬 겨울바람과 맞서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그러나 "차가운 빙벽에 매달려 아이스바일을 찍어 길을 만들면서 한 발짝 한 발짝씩 올라가는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매력이 아날까요?" 대구등산학교 강사 장원석(55) 씨는 말한다.

그것 때문일까. 62m나 되는 거대한 빙벽의 위용에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이들 4050세대들은 차례로 빙벽을 타고 올랐다. 빙벽등반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은 '낙빙'(落氷)사고. '아이스바일'로 빙벽을 찍어 오르다보면 약한 얼음조각들이 수시로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떨어지는 얼음조각에 정통으로 맞으면 자칫 생명까지 잃을 정도로 위험하다. "낙빙"이라고 외쳐 아래에서 오르는 클라이머들에게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날도 떨어지는 얼음조각에 김진동(42. 삼성전자)씨가 얼굴을 다쳤다. 떨어진 얼음조각이 튀면서 눈 윗부분을 스치면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다시금 빙벽등반의 위험을 느낀다. 응급조치 후 상처를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큰 부상은 아니었다. 등반을 마친 김씨는 "조금 다치긴 했지만 괜찮다."면서 "암벽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며 씩 웃는다. 그는 "암벽은 기술이 많이 필요하지만 빙벽(등반)은 체력과 요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암벽등반을 해 본 사람은 빙벽등반 도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고도 한다.

빙벽등반을 하기위해서는 아이스바일뿐만 아니라 빙벽화와 빙벽용 아이젠, 헬멧, 장갑, 안전띠, 자일, 하켄 등의 특수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장비는 일반인들이 장만하기에는 고가다. 요즘 장비는 웬만하면 20만원을 넘어선다.

윤재호(49. 타워크레인 A/S)씨는 "예전에 빙벽등반을 해봤는데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해보질 못했다. 돈을 버느라고 못하다가 이제서야 등산학교에 들어와서 하게 됐다."면서 "모처럼 올라보니 정말 새롭다."고 말했다. 그에게 빙벽등반은 잃어버린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통로가 된 셈이다. 그는 "올라갈 때 기분은 '지랄'같지 뭐. 중간에 '하강'은 할 수 없지. 가다보면 바일을 잡은 손목힘은 빠져 체력이 떨어진 것을 여실히 느끼지…. 어떡하나. 그래도 이악물고 올라가야지."라고 하소연하면서도 "올라가서 느끼는 그 기분,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등산학교 강사 임재득 씨는 "빙벽은 암벽과 달리 자기 스스로 바일로 얼음을 찍어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며 "낙빙사고만 주의한다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빙벽을 타다가 얼음에 다치는 일은 부지기수다. 방심하면 다칠 수 밖에 없다.

빙벽은 40, 50대가 하기에 체력부담이 만만치 않다. 평소 테니스를 즐겨 체력에는 자신있다는 박상호(46.예비군동대장) 씨는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 빙벽등반을 하기위해서는 체력훈련을 제대로 하고 오면 별 문제없다."고 말했다. 하긴 초경량비행기까지 타 본 스포츠매니아인 그에게 빙벽등반이 'XTM스포츠'로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55세의 한 여성은 이날 빙벽기초훈련을 받았지만 62m 높이에 도전하지 못했다. 담력이 부족한 탓이다. 서래미(31.여.대구등산학교) 씨는 "정교한 기술과 체력이 함께 필요한 암벽과 달리 빙벽등반은 기초훈련을 받고 체력만 있으면 여성이 도전하기에 꽤 괜찮은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소개했다.

글.사진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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