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해병1사단 겨울캠프를 가다

4박 5일 '빨간 명찰' 마음속 금빛훈장으로

'자신있으면 도전하라.'

영하의 매서운 바닷바람에 맞서 해상침투용 고무보트를 타고 바닷물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공수기초훈련과 유격훈련, 쉴 틈을 주지않는 교관들의 무자비한 PT체조….

힘들기로 소문난 해병대 겨울캠프가 지난 15일 포항 해병 1사단에서 문을 열었다. 입소식에서 연대장은 "입소하는 순간, 여러분은 해병대의 일원이 됐다."고 선언했지만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4박5일간의 훈련과정을 다 마쳐야 '빨간 명찰'을 달 수 있다. 2007년 첫 겨울캠프인 72기 입소자는 296명. 여성이 68명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57세의 아저씨까지 입소자의 연령은 다양하지만 80%가 10~20대.

여군이 되고싶었던 정소라(37.여.해태제과) 씨는 이번이 세번째 캠프다. 대학졸업 후 세 번이나 여군장교시험에 떨어졌지만 군대는 여전히 정씨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해병대(캠프)에 입소하면 정신이 맑아져요. 생활이 나태해지는 듯 해서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다시 들어왔어요."

실제 캠프에 참가하고 난 뒤, 해병대로 자원입대하거나 여군이 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청주에서 온 민주홍(21.여.청주대1년) 씨는 오는 3월 실시되는 해병대 여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겨울캠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해병대, 멋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해병대에 너무 가고싶었어요."

2일차인 16일. 포항시 도구해안가.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 탑승훈련에 앞서 대기하고 있던 교육생들은 단체로 어깨동무를 한 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반복했다. 쥐가 나서 교관의 응급처치를 받거나 어지러워 열에서 빠져나온 교육생들의 숫자가 20여명이나 된다. 몸이 따라주지않기 때문이다.

1백kg이 넘는 고무보트를 머리 위로 메고 해안을 달려야 하는 '헤드캐링'은 교육생들이 처음으로 체험하는 해병대다운 훈련이다. 패더링(노젓는 훈련) 역시 교육생들을 녹초로 만들었다. 드디어 고무보트를 타야하는 시간. 교육대장의 '진수(進水)' 명령에 10개조가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바닷물이 차갑다. 온 몸이 젖어들지만 재빨리 기마자세로 보트에 올라 구령에 맞춰 노를 젓는다. 해병대 장교 출신인 유동선(34. 회사원) 씨가 조장을 맡은 7조가 가장 먼저 해상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세무단화까지 갖춰신은 유씨는 "옛날 기분이 난다."며 "공수와 유격훈련까지 마치면 완벽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MT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입소한 여대생들에게는 중도포기하고 싶은 유혹의 시간이다. 매번 이틀 정도의 훈련과정이 끝나면 10여명이 중도탈락한다. 교관들이 "이 정도의 훈련도 참지못하면 인생에서 낙오할 수도 있다."며 설득하기도 한다.

극기심과 인내심을 기르는 데는 해병대캠프만한 게 없다.

이번 캠프에는 '강한 아들 딸'을 만들려는 부모들이 홀로 보낸 중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쌍둥이인 김민승·승훈 형제(서울 구의중 1년)는 "엄마 말을 잘 안들어서 오게 됐다."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과 훈련받는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가장 보고싶단다.

역시 서울에서 혼자 온 길민성(서울 연북중1년) 군도 아빠가 '강한 아들이 돼서 돌아오라.'며 혼자 보내서 왔다. 자녀들에 앞서 체험하러 온 아빠도 있다. 양인석(47.가명 경기도 남양주) 씨는 해병대여름캠프에 앞서 사전답사차 왔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울산의 KUM은 신입사원교육으로 활용했다. 장수임(24) 씨는 "이왕 받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인데 잘 안돼요."라며 "평소 행동이 굼뜨고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는데 자꾸 (교관들에게)지적을 당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입소하는 장년층도 적잖다. 최고령자인 김종찬(57. 인천) 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데 다른 일을 하기전에 타성에 젖은 생활을 바꾸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김씨는 열외로 빠졌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모양이다.

부산외국어대 국제통상지역원 재학생 32명도 단체입소했다. 양화영(22.여 부산외국어대2년) 씨는 "현지적응능력을 기르는데 이것보다 더 나은 게 없지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밥이 참 맛있어요." 아닌게 아니라 훈련강도가 더해질수록 교육생들의 식사량이 늘어난다.

3일차인 17일, 공수기초훈련과 각개전투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직접 편지지를 대하니 자신과 가족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된 것 같다. 18일 유격훈련은 사실상 마지막 힘든 훈련이다.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선다. 이때 쯤이면 '해병대'가 왜 대한민국의 3대 패밀리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이상철 기자

※해병대 캠프는?

해병대캠프는 지난 1997년 미 해병대의 '마린캠프'를 벤치마킹, 일반인에 문호를 개방했다. 1980년대부터 보이스카웃 등을 대상으로 해 오던 '상무활동'을 일반인에게까지 대상을 넓힌 것이다.

해병대캠프는 해병대문화를 체험하고 상무(尙武)정신과 호국(護國)정신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 제일 크다. 해병1사단 이윤세 소령은 "군사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해병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프교육도 극기와 인내심, 협동심 배양에 주안점을 두고 나라사랑과 가족사랑을 듬뿍 가슴에 담고 돌아갈수 있도록 하고 있다.지금까지 2만5천여명이 해병대캠프를 체험했다. 해병대캠프는 포항지역에서만 여름과 겨울 두차례 실시하고 있다. 참가자격은 중학생 이상. 해병대사령부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는다. 참가비는 겨울 3만8천320원, 여름 3만2천원.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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