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멀티플렉스 사람들)한일극장 수표팀 양보령씨

"향기 5층으로 이동해 주세요."

"피아노 1, 피아노 1"

영화관에 웬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이야기인가. 단정한 정장차림의 여자 직원이 들고 있는 무전기에선 이런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그거요? 직원들끼리 암호예요. 혹시나 손님들 기분 상할까봐 암호로 대화하는거죠." 위의 암호를 풀어쓰자면 '관객들을 5층 매표소로 이동시켜 달라', '1관에 손님 입장하시도록 방송해주세요'란 뜻이란다.

한일극장 수표(受表)팀장 양보령(34) 씨는 2년차 베테랑 수표직원이다. 극장 앞에서 표를 확인하고 관객들을 정확한 관으로 안내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음식물 반입을 자제시키거나 어린 관객들을 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피자나 햄버거를 들고 가려는 관객들도 있어요. 그런 음식은 냄새가 나서 안되거든요. 그런데 매점에서 파는 음식은 반입이 되고, 밖에서 파는건 안되냐고 따지죠. 요샌 네티즌들이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도 일거수 일투족 조심할 수 밖에 없어요."

한일극장은 역사가 긴 영화관이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단관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관객들도 많다. 그래서일까. 일곱 살 어린아이도 표 없이 그냥 들어가려는 손님도 간혹 있다. "옛날 이야기 하시면서 다 큰 아이도 3,4살이라고 우기면서 데리고 들어가려는 분도 계세요. 가끔은 모른척하고 입장시켜 드리죠. 그게 관객들에겐 재미이기도 하구요."

극장 문을 지키고 있는 터라 에피소드도 많다. 미모의 여자 직원들에게 슬쩍 쪽지를 주고 가는 20대 남성 손님도 있는가 하면 극장 안에서 싸우는 손님들을 말려야 할 때도 있다. "아이가 울어도 입을 억지로 틀어막고 영화를 끝까지 보는 손님도 있어요. 영화볼 때 심기를 건드린다고 싸우기도 하고요. 이럴 땐 우리가 중재에 나서야 해요."

배우들의 무대인사는 양 씨에겐 가장 큰 일 중에 하나. 스타를 보기 위해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팬들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 "'한일극장엔 보디가드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대부분 오래 일한 직원이 대부분이라 그만큼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거죠."

자부심 강한 양 씨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관객들이 좋은 영화 잘봤다고 하실 때예요. 자주 오는 손님들은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관객들이 기뻐하는 순간이 가장 기쁜게 아닐까요."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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