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재생불량성 빈혈 앓는 민홍이와 엄마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내 모진 삶, 끈질기게 버텨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한동안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 모자에게만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주냐며, 왜 내 아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 모냐며 독기를 품고 세상을 향해 소리쳤지요. 세상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 무거워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못난 어미의 절망섞인 한풀이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죄없는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젠 아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구요. 희망도 슬몃 엿보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거든요. 다음달 15일 대구의 한 모자보호시설로 들어갑니다.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곁을 지킬 수 있는 그 곳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살려내겠습니다.

아들 민홍(가명·16)이가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사실을 4년 전 알게됐습니다.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고 있을 무렵, 아이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는 담임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지요. 홍이는 시퍼렇게 변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지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남편에게서 아이만 떼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못난 어미의 순진한 착각이었지요.

아이는 아빠를 두려워했습니다. 남편은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둘렀고 아이는 견디지 못했지요. 점점 말수가 줄고 성격도 변해갔습니다. 어느 날 생활비 한푼 갖다주지 않은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고통'스런 존재였습니다. 어김없이 폭력에 시달렸던 그날 밤,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 맨몸으로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20만 원으로 월세를 얻었고 요구르트 배달, 식당 보조, 간병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짧디 짧았던 그 시간,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홍이가 학교에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면서 여느 아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어느 날, 축구를 하다 넘어졌다는 아이의 다리가 새카만 피멍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후, 수액과 수혈로 연명해 온 4년의 시간. 우리 아이에겐 골수이식희망자도 나타나지 않았지요. 결국 지난해 11월 골수이식의 대안으로 제대혈 수술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아이를 한 줌 재로 날려보낼 순 없었습니다. 수술비와 치료비가 3천500만 원이나 든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어떤 일을 해서라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모자보호시설로 들어가게 됐지요. 수술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아이는 아직도 삶은 감자 하나 제대로 삼키지 못하네요. 제 삶의 전부인 제 아들, 우리 홍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23일 오전 11시 대구 서구의 한 허름한 단칸방에서 만난 김옥자(가명·42 ·여) 씨는 모자보호시설로 들어가기 위해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이 곳보다 보호시설이 훨씬 나을 것 같네요." 김 씨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민홍이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홍이는 수술 후 거부반응이 나타나 2주 동안 사경을 헤맸다. "빚쟁이한테 쫓기는 것, 시설로 들어가는 것, 어느 것 하나 두렵지 않다."는 김 씨는 "아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미치도록 두렵다."고 했다. 그녀는 삶의 마지막을 걷고 있는 아이의 손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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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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