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있을 때 잘하세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상의 名優(명우) 폴 뉴먼은 바람 잘 날 없는 할리우드 바닥에서 성공한 배우이자 CEO로서, 큰돈을 쾌척할 줄 아는 자선사업가로서 두루 명망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큰 신뢰감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소문난 애처가라는 점이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밥 먹기보다 쉽게 하는 할리우드 풍토에서 올해 77세인 그는 아내와 46년째 원앙 금슬을 자랑하고 있다.

누가 봐도 서로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부부를 흔히 '天生緣分(천생연분)'이니 '天定配匹(천정배필)'이니 부른다. 중국에서는 사람 간의 인연 중 특히 부부의 만남을 귀중히 여겨 '몇 번을 환생해도 다시 만나게 되는(生生世世常相聚)',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여겼다.

무릇 부부라면 모름지기 같은 삶의 지향점을 바라보며 나란히 함께 인생길 걸어가면서 동고동락할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게 문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돼도…'의 결혼 맹세를 끝까지 지키기가 점점 힘드는 세상이 됐다. 이혼이 '兵家常事(병가상사)'처럼 됐다. 게다가 노년 이혼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엔 80대로까지 확대돼 이혼의 高齡化(고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의 이혼은 2005년 2천612건으로 전체 이혼 건수의 2%를 차지할 정도다.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황혼 이혼' 열풍이 우리 사회에서 드센 바람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최근, 60년간의 결혼생활을 이혼으로 끝낸 한 할머니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을 보여준다. 정치활동한다며 떠돌아다닌 남편 대신 시부모와 7자녀를 키우느라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남편은 무식하다며 구박만 했다. 딴 여자와 살며 배다른 자식도 둘이나 두었음에도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쥐꼬리만큼 주던 생활비마저 아내가 따진다는 이유로 끊어버렸다. 결국 할머니는 이혼을 결심했다. 할머니인들 오죽 망설였으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앞에 몇 번이나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 이혼소송을 냈다. "남은 생이라도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이유로.

요즘 일본 사회는 올해 이후 황혼 이혼이 더욱 늘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일본판 베이비 붐 세대 즉 '단카이(團塊) 세대'가 대량으로 정년 사태를 맞기 때문이다. 남편 연금의 더 많은 몫을 배우자에게 주는 연금법 개정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아내들이 연금 수령 시점에서 '결혼생활 이만 끝!'을 외칠 가능성이 다분한 탓이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본의 황혼 이혼은 남편의 퇴직금 등 경제적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 근원적이라는 데서 문제가 심각하다. 남편의 아내 무시, 바람기 등 오랜 세월 켜켜이 쌓였던 분노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차올랐을 때 그 유일한 출구로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황혼 이혼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돈도 싫다. 이제라도 내 인생을 찾겠다"는 그녀들의 외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달리 묘책이 없다. 남성들이 달라져야 한다.

황혼 이혼의 발원지 일본에서는 요즘 새로운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아내보다 직장을 우선시했던 남성들이 아내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기, 가사돕기….

로라 부시 여사가 유머 소재로 삼아 더욱 유명해진 미국 TV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 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가정도 들여다보니 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더라는 내용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인생사의 풍랑 위에서 난파 직전에 있는 가정들이 너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12%가 아내가 없으면 한 달 내 폐인이 된다고 한다. 늘그막에 아내에게 이혼당해 갈팡질팡하지 않으려면 유행가 노랫말마따나 '있을 때 잘해'야 하지 않을까.

全敬玉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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