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전략없는 전략 공화국

흔히 대외정책 전체를 가리키는 디플로머시(diplomacy)란 용어를 좁혀 해석하면 국가와 국가의 교섭관계를 의미한다. 디플로머시는 '접어 개다'는 뜻의 그리스어 'diploun'에서 유래해 로마시대 때 금속판으로 된 통행권이나 여권인 디플로마(diploma) 즉 '문서'를 의미했다. 이 용어가 '외교'의 뜻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 말 영국에서다. 디플로머시의 나라이어서 그런지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종교전쟁 등 몇 번의 내전을 제외하고 자국 영토 내에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유럽 대륙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영국의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용어 중 하나가 '戰略(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탈 백수전략''성형전략'등 전략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전략 가운데 국가정책인 대외전략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영국의 사례처럼 말이다. 전략에 국가 이익과 자존심이 걸려 있고 전략의 우열에 따라 사회안정이나 국가안보가 좌우된다. 특히 외교통상, 국방, 에너지수급, 과학기술에 관한 전략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상대를 전제하기에 정부가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끌고 가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마냥 태무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차대한 국가 현안에 대해 국민들은 정부가 내거는 '표어'만 들어봤지, 정작 국가전략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는바 없다. 국가전략이 기밀사항이나 정책결정권자의 영역이 아님에도 국민들은 전략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홍보 자료에도 알맹이는 빠져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전략의 기초는 대부분 '여론'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이 세부 사항을 다듬어내지만 전략의 큰 흐름은 민심을 반영한다. 전략이 소수 정치인이나 권력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民意(민의)에서 비롯되고 국가발전에 부합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국회나 국민투표라는 절차도 이를 보장하는 한 장치다. 대중의 뜻에 반하는 전략이라면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고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최근 불거진 '독도밀약설'이 단적인 예다. 한 월간지가 1965년 한'일 양국이 극비리에 체결한 독도밀약의 실체를 보도했는데 정부가 한일협정을 맺기 위해 최대 걸림돌이던 독도 문제를 밀약을 통해 봉합했다는 것이다.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속조항은 모두를 허탈하게 만든다. 밀약설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전략도 모르고 공연히 독도문제에 핏대를 올리며 중구난방으로 떠든 격이다.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바로 이 밀약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 국민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北核(북핵)과 중'일의 한국사 왜곡, 독도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마찬가지다. 이 현안들은 대한민국 안보와 이익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에 적극 대응을 주문하며 때로 흥분하기도 한다. 민심을 거스르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의 행태를 보면 디플로머시나 無事(무사)에만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국가전략과 여론이 겉도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에 정부가 빈약한 전략으로 어정쩡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역사교과서 왜곡으로까지 비화됐다. 또 일부 언론에 보도된 미얀마 가스전 구매권을 둘러싼 한'중 외교전도 그런 경우다.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된 결과이겠지만 복잡한 것을 쉽게 풀어가는 것이 디플로머시와 전략의 힘이다. 그만큼 전략은 중요하다. 정부의 전략을 모르면 국민은 불안해진다. 無(무)전략과 잘못된 전략에는 더욱 불안해진다. 민심을 외면한 전략이라면 이는 최악이다.

徐琮澈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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