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4년째에 이르고 있으나 지루한 공방이 끝날 줄 모르고 있다. 특히 이달 초에는 어렵사리 본회의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게 됐다. 반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취지의 기초노령연금법은 통과돼 국민연금과의 관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재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구조다. 매일 800억 원의 잠재 부채가 쌓이고 있으며 40년 뒤에는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 걷는 돈으로 지급해야 하는 형태가 된다. 지금의 청소년들로서는 자신이 성인이 됐을 때 닥칠 문제인 만큼 남의 일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구조와 문제점, 개선 방향 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기초노령연금법 설립 취지와 같이 연금 사각지대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까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재정 위기
국민연금 재정이 위태롭다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급받는 돈을 생애 평균 소득의 60%로 정하려 했으나 국회는 노인 표를 의식해 70%로 고쳐서 도입했다. 1998년에 개정이 논의돼 받는 돈을 생애 평균 소득의 55%로 낮추자는 안이 나왔으나 국회는 또 60%로 고쳐서 의결했다.
2003년 10월 정부는 다시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해 연금 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국회는 3년 넘게 끌어온 개정안을 이달 초 부결하면서 재정 부담이 있는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시켰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권의 속성이 국민연금 위기를 불렀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진 셈이다.
여론의 질타도 정부보다는 국회에 맞춰져 있고, 특히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에 집중된다. '정치권은 이미 3년 동안이나 국민연금 개혁안 심의를 외면하며 직무상 태업을 벌였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 또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 그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 것인가.'(신문 사설) '흥청망청 인심을 써서 표를 얻겠다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파멸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다. 책임 있는 정당이 아니다. 이러고서야 한·미 FTA를 놓고 자신의 지지층과 정면대결을 벌인 노 대통령을 무슨 낯으로 비판할 것인가. 이런 정당을 어떻게 믿겠는가. 또 집권한들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해온 현 정권과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신문 사설)
▶연금 개혁의 시급함 정도는
이번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된 데 대해 조속한 재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주장의 밑바닥에는 시간이 없다는 급박함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면 올해 내 처리가 어려울 수 있고, 그러면 연금 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내년에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생긴 때부터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이들은 가입 20년이 돼 법이 정한 연금을 100% 다 받는다. 배준호 한신대 교수는 "완전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 그들의 반발 때문에 연금을 깎는 개혁은 매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가 연금제도를 공약으로 채택하면 인기 위주의 개정안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신문 기사)
위기 상황을 부각시키면서 정치권의 반성을 촉구하고, 시급하게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이 정부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좌절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3년여를 끌어온 이번 개혁안이 부결됨으로써 정부가 다시 제출할 명분도 약해졌을 뿐 아니라 일정상으로도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선과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대립 양상이 이제까지보다도 더욱 첨예화할 것으로 보이는 것도 큰 이유다. 각 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안위가 걸린 내년 총선에 대비,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셈법을 배우기를 권한다. 오히려 정부를 독려해서 연금 개혁을 이루는 게 국가도 살리고, 의원 개개인도 사는 길이다.'(신문 칼럼)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물론 있다. 지나치게 위기를 강조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아니므로 성급하게 제도를 바꾸려 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2047년에 적립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위협이 아니라 앞으로 40년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방식은 전적으로 국민 선택사항인데 이를 가지고 큰 재앙이 곧 닥쳐올 것같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오만에 가까운 것이다. 설사 정부·열린우리당 안과 같이 적립률을 높이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시행 시기는 2008년 1월이므로 금년 말까지 개정하면 될 것인데 지난 4월초에 국회 통과가 되지 않아서 큰일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신문 칼럼)
▶기초노령연금법과의 관계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되고 기초노령연금법이 통과된 사실을 두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복지부장관은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다. 기초노령연금법은 국민연금법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별개의 필요 법안이 되기도 하고 국민연금법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동전의 양면이 되기도 한다.
기초노령연금법 통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법 제정의 배경부터 언급한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논의과정에서 출발한 법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재정 안정화를 꾀하는 동시에 기초노령연금제도를 통해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연금제도 개혁의 기본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한 부수법안에 지나지 않는 기초노령연금법에는 당연히 거부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법이 발효될 경우 당장 내년부터 2조 4천억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를 마련하지도 않고 일괄 상정된 법안 가운데 선심성 법안만 통과시킨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신문 사설)
그러나 법의 취지나 성격, 대상 등 여러 측면에서 두 법은 각기 다르므로 패키지 법안으로 보는 건 잘못됐다는 여론도 높다. '기초노령연금법은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것이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60세 미만 근로계층에 대한 것이므로 대상자가 다르고, 연금재정 안정화는 40년이라는 완충기간이 있지만 현재 노인의 생계는 당면 문제이기 때문에 기초노령연금법이 먼저 통과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신문 칼럼)
따라서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은 오히려 늦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인공들의 노후 생활을 위해 국가가 연금가입자 평균 소득의 5% 정도를 지급하는 일이 큰 부담일 수는 없으며 여타 선진국과 비교하면 결코 이르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용어 설명
▷ 국민연금법=국민에게 소득이 있을 때 낸 연금을 노후에 지급함으로써 소득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1월부터 시행됐다.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별도 연금에서 관리하며 나머지 국민이 가입 대상이다. 20년 이상 가입하고 60세에 이르면 연금을 받는다.
▷ 기초노령연금법=노후 소득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으로 이달 초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1월부터 만 70세 이상 노인의 60%에게, 7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인 300만 명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월 평균 소득의 5%(8만 9천 원)를 지급하게 된다.
▷ 노인3법=국민연금법과 함께 기초노령연금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노인3법이라고도 부른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치매 등을 앓는 노인들에게 수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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