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습관

조선 정조 때의 서화가로 시·서·화 三絶(삼절)로 불렸던 申緯(1769-1847)는 '돌에 미친 사람'이라 할 만큼 돌을 좋아했다. 심지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도 가는 곳마다 수석을 주워 수레에 싣고 다녔다 한다. 역시 조선 후기 때의 천문학자며 기술자·화가 등 다재다능했던 鄭喆祚(1730-1781)는 아예 호가 '돌에 미친 바보'(石痴)였다. 늘 칼과 송곳을 가지고 다니면서 돌만 보면 벼루를 깎는 습관이 있었다. 당대의 시인묵객 치고 석치의 벼루 한 점 소장하지 못하면 수치로 여길 만큼 명품 벼루였다 한다.

무언가를 '치우치게 즐기는 병'이자 '고치기 어려운 습관'을 흔히 癖(벽)이니 痴(치), 또는 癡(치)라고 한다. 요즘 말로는 '~狂(광)', '마니아(mania)'쯤이랄까. 조선조에만 해도 꽃에 미쳐 꽃밭에서 살다시피했던 '백화보'의 저자 金德亨(김덕형), 좋은 그림에는 침식을 잊을 만큼 그림 수집벽이 남달랐던 정조의 사위 洪顯周(홍현주), 서화 표구에 빠져 평소 풀그릇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方孝良(방효량) 등 특이한 취미를 가진 기인들이 적지 않았다.

한편 사람에겐 누구나 좋든 나쁘든 제 나름의'습관'이 있다. 요즘 들어 이 '습관'이란 것이 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한 양로원에 서로 남남인 한국 노인 두 분이 있다고 했다. 모두 치매 환자들인데 할아버지는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공손히 인사를 하는 반면 할머니는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전직 목사님이었고, 할머니는 특정 직업 출신이더라는 것이다.

폭력조직 두목 출신인 조양은 씨가 또 쇠고랑을 찰 위기에 놓였다. 벌써 7번째. 한때 주먹 세계를 주름잡았지만 오랜 수감 생활 후 종교에 귀의, 변화된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엔 역시 조폭 두목 출신으로 새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진 김태촌 씨가 어느 탤런트를 협박했다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이들도 한때는 진정으로 옛것을 털어내고 새롭게 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이지 옛 습성의 뿌리란 얼마나 깊고도 완강한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에만 집착할 뿐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데는 영 무관심한 듯하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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