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며칠 전 '초혼(김소월)'을 수업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화자의 처절한 슬픔과 그리움이 잘 담긴 작품이다. 가족 중 아무의 죽음도 겪지 않았을 학생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의 사랑하던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지난 부활절, 가족과 함께 죽도성당에 다녀왔다. 신앙심도 없는 내가 성당을 찾은 것은 한 청년을 만나고자 함이었다. 죽도성당의 지하 추모관에 있는 그 청년을 찾아 갔다. 묘비도 없이 작은 표석에 씌어 있는 글씨,

권○○. 프란치스코 1987.3.14~2007.2.15.

그 네모난 표석 안쪽에 한 줌의 재로 안치되어 있는 청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19년 11개월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간 청년. 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평생 가슴에 묻어야할 자식 같은 제자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교정에서 보았다. 영정을 안은 그 아버지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내린 후, 그 제자의 열정과 땀이 밴 운동장, 교실과 도서관을 바라보시던 모습을 지켜보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죄스럽던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던 학생이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특히 공부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담임을 맡았던 1년 내내 중간·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더구나 수능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을 해서 담임인 나를 기쁘게 했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일침의 말로 자만심을 경계했다. 두 번째 전국 1등을 할 때는 놀랍고 대단하여 '넌 최고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운동도 잘하여 체육대회에서 반대표 농구 선수로도 뛰었다. 그리고 예비 고3 겨울 방학 때 봉사활동으로 햇빛마을(노인요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봉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3일간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올 정도의 열정을 보였다. 결국 수석졸업과 함께 서울대 의예과를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대학 2학년이 되었을 텐데······.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소월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 제자에게 '사랑한다'는 말 심중의 한마디 끝끝내 마저 못했다. '더 열심히 해라', '잘한다' '넌 최고야'라는 말밖에 못 했다. 그의 맑고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영혼을 칭찬해 주지 못한 점이 가슴에 저린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으로 그 '죽음'의 슬픔을 초월한다. 불꽃처럼 살다간 제자를 내 평생 가슴에 추억으로 담고 살아가리라. 그리고 소월의 시 '초혼' 마지막 내용을 외쳐본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제자여! / 사랑하던 그 제자여! //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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