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이 있는 길)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하늘과 들판이 한 빛이다. 파랗다. 봄은 겨울의 불모성을 극복하고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운다. 모든 생명을 싹트게 하고 사람들은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그 봄의 막바지인 5월에 피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그런데 절정이란 말은 알고 보면 참 슬픈 말이기도 하다. 이제 무너짐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란이 지면 봄도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숨겨진 전제를 놓칠 수는 없다. 꽃은 겨울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봄에 개화할 수 있다. 따라서 꽃이 아름다움이요, 희망의 상징이라 하더라도 그 이면에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모란을 통해 시인은 인간의 절망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가 태어난 일제 강점기 하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시의 심각성은 더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가는 봄과 피어나는 모란의 결합이다. 봄의 막바지에 모란이 피어나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모란이 지는 날이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시인이 포착하고 있는 절정의 순간은 결국 봄과 모란을 함께 상실하는 순간이라고 할 것이다. 소멸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서의 극치를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한다.

다산초당을 거쳐 강진읍내에 들어섰다. 강진 땅에 사는 강진 사람들의 영랑 사랑은 아주 특별하다. 영랑식당, 영랑다방, 영랑로터리, 모란식당…모두가 영랑이요, 모란이다. 강진 터미널에서 강진로터리를 끼고 돌아 직진을 하여 우회전을 하면 제법 터가 넓은 곳에 자리한 아담한 초가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1992년에 옛 모습을 살려 복원되어 지방문화재 제89호로 지정돼서인지 영랑이 세상을 뜬 뒤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 건물같이 튼튼해 보이고, 깨끗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영랑이 살다 간 집. 그 집도 일제 강점기 영랑처럼 주위환경이 도시화함에도 불구하고 초가집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이백 년이 지난 나무들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뒷산과 연결되는 북산에 숨어 독립선언문을 등사했던 주인을 보듯 숱한 세월과 싸워 이기며 자라고 있었다. 대문에 들어가기 전에 서 있는 영랑의 시비가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사람의 손이 들어간 장식품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눈에만 아름다울 뿐이다. 사랑채 모퉁이에 있는 유자나무가 그 세월을 대신하듯 시멘트로 자신의 몸을 유지하면서도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영랑이 살았던 집에는 그의 비판적 세계인식과 저항의식이 베어있는 듯했다. 그렇게 우린 영랑을 만났다. 그렇게 우린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만났다. 아이들은 사랑방에서 내다보고 있는 영랑의 얼굴을 보고 참 잘 생겼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엄해만 보이는데….

돌아오는 길, 우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섬진강휴게소 전망대에서 섬진강을 바라봤다. 2학년 학생들이 말한다. '선생님, 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개장터가 있겠지요?' 참 흐뭇하다. 아이들은 이미 저 강이 화개장터를 거쳐 내려옴을 안다. 왜? 그들은 이미 작년 문학기행 때 섬진강 가에서 김용택의 시를 읊었고 화개장터를 거닐면서 소설 '역마'에 나오는 계연과 성기의 슬픈 사랑을 되새겼으니까. 문학기행의 힘은 거기에 있다. 이미 아이들은 시작과 끝을 안다. 출발과 돌아옴을 안다. 섬진강은 아주 맑은 물빛으로 여름을 숨쉬고 있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김영랑의 '영랑시집'

1935년 11월 5일 시문학사에서 발행한 첫 시집이다. 김영랑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비롯하여 총 53편의 작품을 제목을 달지 않고 번호로 작품을 배열한 특이한 체제를 지니고 있는 시집이다. 그의 작품은 청징(淸澄)한 정서와 새로 시험한 4행시(四行詩)의 유려한 시형과 현묘한 운율, 시어 조탁(彫琢)의 정밀, 섬세 및 기법의 참신성 등으로 순수 서정시의 하나의 절정을 이루고, 또 한국 근대시에의 전환기를 마련한 시집이다. 1930년대 시단의 쌍벽이라 할 수 있는 정지용의 시와 더불어 커다란 공적을 우리 시단에 남겼으며, 전통적 계승의 문제에서 볼 때 이 시인의 세계는 소월의 뒤를 이어 서정주, 조지훈 등에 넘긴 한국시의 한 전통 세계의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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