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복지국가의 하나다. 복지의 주요내용은 공짜의료, 공짜교육, 노령연금으로 요약된다. 이런 복지제도는 다른 국가들의 눈을 현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북유럽 복지제도를 나타난 결과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직장생활을 할 때 소득의 40%가 넘는 돈을 세금으로 내놔야 한다. 스웨덴 경우 많은 사업장에서 직원들의 꾀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진단서가 있으면 일 안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세금 부담으로 젊을 때는 외국에 나가 살고, 늙어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국가적 비생산성의 문제도 일어난다. 사회주의 국가의 주된 침체 이유다.
북유럽 복지제도는 그들 나름의 문화적 배경이 있다. 이들 나라에는 만 18세가 되면 자녀들을 가정에서 내보내 혼자 생계를 꾸리도록 하는 관습이 전해진다. 척박한 땅, 불모의 생활환경이 농경사회와 같은 群居(군거)보다 개별거주를 선택하도록 한 것 같다. 이런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 공짜의료요, 공짜교육이다. 자녀를 일찍 독립시키되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복지제도의 취지다. 자녀 조기 방출은 동거문화의 확산과 부모 자식 간 연대감 약화라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늙으면 사회가 자식 노릇을 대신해주는 노후복지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최근 당정간 합의로 국민연금제가 개혁의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개혁 논의는 두고두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단추를 잘못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논의는 뒤로 밀쳐두고 우리 사회가 문제의 본말을 뒤집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복지 중 최상의 복지는 가족이 부모를 부양하는 가정복지다. 그것은 경제적 뒷받침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복지까지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복지의 핵심적 요소를 지난 수십 년간 무시하거나 외면해왔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한국의 가족제도'를 불과 수십 년 만에 반신불수로 만든 것이다.
연금제는 물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금제를 복지의 완성으로 보거나 만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금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 뿐이다. 가정을 건전하게 만들고, 안정시키는 일이 연금제보다 훨씬 중요하다. 가정복지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을 연금제로 보완해 나간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홍수를 막기 위해서는 댐(연금제)도 필요 하지만 논(가정)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연 가정 건실화에 대해 어떤 접근과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이념투쟁과 기득권을 때려잡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아 나라의 細胞(세포)인 가정이 죽어가도 아예 눈을 감지 않았나 하는 소회가 없지 않다. 그것은 심각한 정치적 문맹일 뿐 아니라 문화적 문맹이다.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는 가난의 확산, 그리고 가정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위기를 일자리 만들기가 아닌 얄팍한 연금 봉투로 막아보겠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연금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것은 언젠가 국가 재정파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연간 12만~16만 건의 이혼에 대해서도 이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그 의미의 중대성을 모를 뿐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데에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정의 와해는 부부문제뿐 아니라 청소년문제, 노인문제로 이어진다. 총기난동, 방화와 같은 반사회범의 양성소가 바로 와해된 가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몇%를 받고 몇%를 주니 마니 하는 서양식 연금 산술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손가락 밑의 가시만 보고 염통에 쉬 스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 전통에 맞는 한국식 복지를 발전시킬 문화적 각성이 있어야 한다. 가정이 복지의 버팀목이 돼 준다면 덜 내고 덜 받는 용돈연금인들 나쁠 것이 없다. 되지도 않을 선심을 쓰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가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요즘이다.
박진용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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