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태평초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김정호(수필가)
▲ 김정호(수필가)

조선 영조 때 당쟁의 뿌리를 뽑기 위한 방책의 하나가 '탕평책'이라고 했던가. 어느 날 영조의 식탁에 청포묵에 각종 고명을 섞어 무친 음식이 나왔는데 이를 가리켜 '탕평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포묵무침이 '탕평채'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된다. 탕평채는 청포묵에 쇠고기와 싱싱한 갖가지 야채, 계란, 김 등을 얹어 버무린 묵무침이다.

청포묵의 밝은 흰색과 매끄러운 감촉은 숙주 오이 당근 미나리 등 사각거리는 야채와 어우러져 조화롭다. 이는 영조의 정책이 배어든 것 같은 음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평채는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갖춘 음식이다.

녹두의 녹말로 만든 청포묵의 탄수화물과 계란 고기의 단백질, 김 미나리 숙주의 비타민과 무기질 등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시각적으로도 우리 민족 고유의 기본색인 오방색을 갖춘 음식으로 어르신들도 쉽게 소화할 수 있으며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건강식으로도 그만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 4대 미각 외 제5의 맛으로 우마미(감칠맛)를 발견했다고 한다. 맛이란 게 꼭 혀로만 감지되는 건 아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맛도 있는 법이다.

안동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하루 머무는 동안, 그곳 별미라는 '태평초'를 먹으러 가자는 이끎에 '별 희한한 음식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육수가 담긴 양은냄비가 불 위에 올랐다. 돼지고기와 묵은 지와 각종 야채와 양념, 마지막에 듬성듬성 칼질을 한 메밀묵을 곁들이고 기다리니 미리 끓고 있던 국물이 자작자작 소리를 냈다.

친구는 이제 먹어도 된다는 눈짓을 해 왔지만 숟가락이 가지 않았다. 툭사발보다는 장맛이라며 한사코 권하는 친구의 인정에 못 이겨 떠먹어 본 안동 특유의 태평초는 뒷맛이 수더분하면서도 깔끔했다. 메밀묵의 무미(無味)함이 담백하고도 맛깔스런 맛의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태평초는 탕평채의 변형일까. 사실은 태평초의 고른 영양과 감칠맛 나는 맛도 맛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영조대왕의 탕평책을, 가슴으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탕평(蕩平)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태평을 바란다고 그 태평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지만…

김정호(수필가)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육사총동창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총동창회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8'의 역대급 사전예약에 힘입어 구미에서 열린 '2026 갤럭시 런칭 페스타 with 구미' 행사에는 200여 명이 ...
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인구 방어선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구미시는 40만명 방어선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고령군은 인구 3만명 회복을...
필리핀에서 중국인이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위조하여 전력망 사업에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이민국은 로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