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그녀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묻고 대답한다.
"왜 언제나 남성들만이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지는가. 여성은 아이들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가. 만약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만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 두 개의 열쇠는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그러나 당대는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더라도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소유할 권리가 법률로 보장돼 있지 않으니 아무 소용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울프는 당시 남자들만의 몫이었던 것들을 상상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우리들에게 남겨줄 돈이 없었는지, 가난이라는 것이, 부유하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고민한다. 그리고 한쪽 성의 안녕과 번영, 다른 쪽 성의 가난과 불안정에 대해, 전통 혹은 전통의 결핍이 작가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서 울프는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물적 토대가 얼마나 취약하기 짝이 없는가를 지적하며, 이 글 전체의 결론, 즉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 정도의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먼저 내놓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편지 형식의 에세이 '3기니'에서는 세계평화의 증진이라는 대의를 위하여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여성을 대학에 진입시켜 고등교육을 받게 해야 하며, 그런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임을 역설한다. 그래서, 여자대학 재건 기금과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원조하려는 협회의 기금으로 각각 1기니의 기부를 결정한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게, 인간다운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1세기 전, 영국의 여성 작가의 경험적 주장에 새삼 귀기울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21세기 초, 여기는 한국.
2007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 따르면,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1.1%(2006년 현재)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학력 수준은 괄목할 만하다. 또 하나, 작년도 직장인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 남성의 92.8%, 여성의 89.5%는 결혼한 후에도 여성이 일하는 것을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54.5%에 불과한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최저수준이다. OECD 평균 60.4%,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 83.5%에 비해서는 30%가량이나 떨어지는 수준이고 이웃 일본의 60.8%보다도 낮다. 특히 결혼이나, 출산 ·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현상이 심각하여, 25~34세까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다른 국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현저히 낮아지는 소위 M자형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다. 여성들의 학력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 욕구도 증가하지만 가정, 기업, 사회 인식과 고용환경이 미흡하여 많은 여성이 일과 결혼 또는 일과 출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심각한 현상을 이 보고서는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은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 이후 세계도 놀랄 만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왔다. 남녀차별적 법 · 제도의 개선으로 양성평등의 사회기반이 마련되었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성별영향 평가를 제도화함으로써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예산을 비롯한 국가의 각종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정책수립과정에서도 양성평등 관점이 고려되고 있는 등, 법 ·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양성평등사회가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 측면에서 보면, 여성의 임금 수준이 남성의 64.5%(2004년 현재)에 불과한 정도며, 고용의 질적 수준도 남성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여성주간 행사의 주제를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설정,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삶을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념식과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성이 마음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2만 달러 시대를 향한 한국 경제의 또 하나의 도약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다시 버지니아 울프.
울프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일을 해야 '분노와 항의로 얼룩지지 않는, 가난에도 억압에도 얽매이지 않을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고 희망한다. 남성과 여성이 대결하지 않고 '인간 정신이 경계를 넘어서 다양성으로부터 통합성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지향하고자 여성의 창조적 역량을 모든 분야에서 발휘하도록 하는, '진정한 양성이 조화를 이룬 인간적인 시대를 갈망'한다고 '자기만의 방'을 끝맺고 있다.
이정옥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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