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중심잃은 한국축구

혈기 넘치는 축구 팬들은 15일 한국과 바레인과의 아시안컵 축구대회 경기를 보고 실망을 넘어서 분노를 터뜨렸을 것이다. 핌 베어벡 한국 대표팀 감독은 이 경기 하나로 거스 히딩크의 뒤를 따르기보다는 움베르토 코엘류나 본 프레레의 길을 갈 가능성이 커졌다. 감독 경질론이 새어나오고 있다.

2002년 월드컵부터 한국은 경기를 지배하는 플레이를 할 줄 아는 팀이 됐다. 공격에 나서다가도 상대 수비가 정비되면 공을 돌리며 빈 틈을 찾는 플레이로 경기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경기를 했다. 공·수가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강팀을 만나도 쉽게 골을 내주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게 됐다.

대신 공격의 활기가 약화되기도 했다. 예전의 한국 축구는 공격 에너지가 강해서 약팀을 만나면 줄기차게 몰아붙이며 대승을 거뒀고 강팀을 만나더라도 공격 지향적인 플레이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강팀에게 수비의 약점을 찔리며 많은 점수 차로 패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 축구는 예전처럼 공격에 치중하지 않는다. 공격의 강약을 조절하고 체력을 안배해가며 경기를 지배, 승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경기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공 지키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뒤 공간이 쉽게 뚫리는 수비의 허술함은 세련된 방식으로 승리를 추구하기에는 모자라 보인다.

때때로 승리에 대한 정신적 강인함이 부족한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경기는 냉정하게 풀어가더라도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2003년 아시안컵 대회 예선 때의 베트남 전이나 오만 전 패배에 이어 이번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겹쳐 패배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훌륭한 참모로 4강을 이룬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핌 베어벡 감독은 5년 후 납득 못할 경기를 펼치는 대표팀의 사령탑이 되고 말았다. '사색형 지도자'인 그는 '생각하는 축구'를 강조해왔으나 바레인 전의 한국 선수들은 생각 없이 부정확한 패스나 크로스를 올리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베어벡 감독은 전술 운용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벤치에서 다른 감독들보다 조용하게 있으면서 선수들의 무책임한 플레이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때마침 자신의 재단 일로 한국을 방문 중인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베어벡의 실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김지석 스포츠생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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