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우체국은 대구지하철 무료승차 카드인 '실버패스카드'를 발급받으려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이들 대부분은 A4용지 3장에 빼곡히 적혀 있는 약관을 채 읽어볼 틈도 없이 형광펜으로 그어진 '성명,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난을 채우기 바빴다. 김모(77·여) 씨는 "무엇 때문에 서류를 작성하는지는 잘 몰라도 쓰기 편하다니까 교통카드를 발급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크카드나 신용카드 등 일반 금융권카드 발급과 관련된 것임을 뒤늦게 안 일부는 "교통카드 발급받으러 온 건데 연회비가 무슨 소리냐."며 "좀 더 생각해보고 오겠다."면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우체국 직원들은 "어르신 대부분이 교통카드 사용의 편의성만 생각하고 오셔서 설명하느라고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공사가 지난 4월 LG카드사와 '대구지하철 우대용 교통카드 운영협약'을 체결한 뒤 내놓은 지하철 무료승차 교통카드인 '실버패스카드'가 정작 사용자인 노인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우체국을 찾아가야 하는데다 복잡한 카드 발급 과정 및 연회비, 할부 구입, 현금서비스 등에 대한 약관 등이 노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 게다가 실버패스카드 중 신용카드 역할을 겸하는 카드는 노인들의 소비심리 자극뿐 아니라 카드 분실시 사회 문제로까지 번질 우려도 적지않은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날 우체국에 갔다가 카드 발급을 포기했다는 진중근(67·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이는 경로우대자를 신용불량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설명한 뒤 날인만 받아 카드를 발급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윤복(66·남구 대명동) 씨는 "교통카드를 발급받으라고 안내문을 돌려놓고는 사실상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교통카드를 미끼로 우체국 계좌 개설이나 신용카드 발급에 공공기관이 나선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대구지하철 실버패스카드는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데 체크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연회비가 없는 대신 우체국 계좌를 신설해야 하고, 신용카드로 사용하려면 연회비 7천 원을 내거나 연회비 대신 신용카드를 1년에 한 번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이에 대해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실버패스카드는 우대권의 부정 사용을 막고 노인들의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한 것으로 반드시 발급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실버패스카드 보급률이 적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우대권 발권기도 함께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27일부터 사용 가능한 실버패스카드는 18일 현재 대구시 65세 이상 인구 20만 6천여 명 중 1만 3천여 명(6%)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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