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도나 네팔, 티베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무소유와 행복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다. 또한 여건이 허락한다면 또 다시 그 장소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곳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은 없다. 사람들은 일생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네팔과 인도, 혹은 티베트를 여행하고, 그들의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칭송하거나 그곳에 가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곳의 삶'을 (책으로 펴내) 팔아먹는다. 그들이 그곳의 삶을 그처럼 동경하면서도 거기로 이주하지 않고, 그곳의 삶을 떠벌릴 때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차가운 웃음을 머금게 된다. 네팔이나 티베트는 살아갈 곳이 아니라, 여행할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채워도 채워도 '허기'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비움의 포만감'에 대해 말한다. 작가는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 느낀 소소한 감정을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비움과 무소유를 칭송하는 책들은 많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차이점이라면 이 책이 무소유 혹은 비움을 최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 작가 박범신은 데보체 마을에서 열 여섯 살짜리 소녀를 만난다. 이 소녀는 카트만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사촌언니를 도우러 이 깊은 산 속 마을에 들어와 산다. 소녀는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바르고 있다. 붉은 루즈는 소녀가 이 산골짜기에서 겪는 적막과 고독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가를 말해주는 상징이다. 작가가 하룻밤을 묵고 떠날 때 소녀는 동구 밖까지 배웅한다. 소녀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아이는 떠나는 박범신에게 자신의 주소를 적어주며 뭐라고 빠르게 말을 한다.
'말 사이 사이에 '코리아'가 끼어드는 걸 보면 '한국에 가고싶다' 뭐 그런 말을 하는 듯 합니다.' -80p-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쳐진 이 깊은 산골 소녀에게 문명은 그리움이다. 소녀가 살고 싶은 장소는 '무소유'의 산 속이 아니라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시인 것이다.
작가는 꿀맛 같은 고원의 감자맛과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들, 너무도 곧게 자라는 나무들과 겸손한 야크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더불어 작가는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창 가득 휘날리는 눈발을 봅니다. 사람이 그리워 눈물이라도 날 것 같습니다. 나의 내부엔 초월적인 세계로 떠나고 싶은 원심력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함께 사랑하며 살고 싶은 구심력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들은 무소유의 순결성에 흠집이 될만한 말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고 순결해 보인다.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너무 많은 것과 빠른 것을 탐하고 있지 않은가, 한번쯤 돌아보자고 권유할 뿐이다.
한순간 '이게 아닌데…사는 게…이게 아닌데…'라는 가슴속 울림을 통증처럼 느끼면서도, '오늘은 미친 듯이 술 한잔 마시고 다 잊어버리자'며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도, 술자리를 파하기 무섭게 남들보다 먼저 택시를 잡으려고 민첩하게 달려드는 것이 현대인의 풍속화다. 작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동안 볼 수 없었던 도시의 우울한 풍경을, 저 먼 히말라야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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