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거리문화시민연대는 최근 대구명물 음식골목 가이드북인 '대구식후경'을 펴냈다. 211쪽에 이르는 이책은 비매품으로 발간됐으나 나오자마자 인기 폭발. 대박이 났다. 추가로 책을 더 찍고있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이책은 지난 사계절을 고스란히 대구의 맛에 바친 젊은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대구와 대구주변의 음식점 골목골목을 누비며 대구의 맛과 멋을 온몸으로 찾아다녔다. 때로는 상인들에게 감금을 당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상인들과 울면서, 때로는 그들과 웃으면서 그렇게 대구의 맛을 하나하나씩 보태어 갔다. 이책은 다운타운 도심지, 다운타운 외곽지, 막창특구, 앞산권역, 팔공산권역, 달성군 가창권역, 달성군 다사권역등 8개영역으로 나누어 식당지도와 함께 상인들의 이야기 역사등이 생생히 소개돼있다. 책 끄트머리에는 대구십미 대구십경을 소개해두었다. 여섯 젊은이들이 맛에 풍덩 빠진 사연을 들어보자.
◆ 무시무시한 대구음식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이 말하는 대구음식에 대한 충격은 하멜표류기에 기록된 중세 조선의 두려움에 비하지 않을까?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은 1653년(효종3년) 제주도에 난파해 14년간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 힘겹게 '충격의 코리아'를 탈출하게 된다.
외지인들은 대구음식이 간이 맵고 짜, 자극적이라고 말한다. 누구는 국밥에 깍두기만 달랑있는 '피란음식'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하면 마늘 몇쪽, 풋고추, 된장, 새우젓깔이 다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보통의 식당들은 가정집 상차림보다 못하다.
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현지인들은 늘 고통이다. 손님을 대접할 때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브랜드를 달고 주차장 널찍한 곳에 가보지만 맛보는 음식들은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메뉴들이다. 지역 고유의 맛과 상차림이 있으면서 회식이나 손님접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다. 서른이 넘으면, 모르는 음식점 문을 열기가 두렵다고들 한다.
대구음식 과연 두렵기만 한가?
◆식당 들어가기가 두려운 도시
이 도시의 많은 음식점들의 기준은 '맛'에 있지 않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매일 맛이 변한다. 대봉동에서 유명한 음식점에서 육개장을 시켰다. 알고보니 '국공장'에서 만들어오는 메뉴였다. 변함없는 맛에 대한 기억이 곧잘 사기당한다.
골목에 단골 정식집, 직장인에겐 기본이다. 진골목의 어느 밥집에 손님과 밥집아줌마들간에 낮술이 오고가고 있었다. 술먹은 주인이 내놓은 음식은 '치명적'이었다. 혹 한 테이블에서 여러 메뉴를 시키면 밥집아줌마 인상이 돌아간다. 마음씨 착한 대구인들은 알아서 '메뉴공산당'이 된다. 모두가 같은 메뉴로 알아서 통일하는 것이다.
한번은 밥반찬을 옮겨온 쟁반을 테이블위에 그대로 놓길래 내려놓고 먹으려는데 그대로 두고 먹으란다. 치우기 귀찮다는 것이다. 중고등'대학교 주변의 밥집들은 가격은 싸지만 맛이 아이들을 농락하는 수준이며 가끔 안전한 먹거리의 경계를 넘다들기도 한다.
고 이규태선생은 전라도 사람들은 '밥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 '돈을 남겨서는 안된다'라는 고집이 풍요로운 상차림문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구 사람들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원조의 맛은?
원조에 대한 광적인 열풍도 있었다. 이에 편승해 먹거리골목의 식당들은 간판에 '원조'글자를 남발했으며 선의의 경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집창촌'처럼 호객행위를 해도 부끄러운줄 모른다. 인테리어와 대형화로 살아남으려하니 원조의 맛은 사라진지 오래고 '원조 옆집으로 가라'라는 말도 생겨났다.
어떤 식당은 30종이 넘는 '백화점메뉴'지만 '김치찌게, '순두부찌게' '참치찌게'를 시키면 내용물이 차이가 없다. 메뉴판의 한 음식을 고르면 '그건 재료가 떨어져서...' 손님과 식당간의 약속인 '메뉴판'이 고무줄이 된다. '주는 밥' 잘 먹고 나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된다.
갈비탕을 시키면 '80년대예식장'스타일로 계란을 풀어서 국물맛을 내는 집도 버젓이 맛집책에 소개되어 있다. 한정식집도 기본이 밥과 국, 김치인데 입맛을 자극시키는 반찬만 계속 나온다. 마지막에 어설픈 국과 밥이 나온다. 맛이 없어도 상을 가득 채우는 '반찬가지수양'에 눌러 말도 못하고 나온다.
◆대구맛의 재발견
지난 1년간 '대구맛의 재발견'을 위해 음식점들을 표류(?)해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맛집'에 열광하는 30대 도시민들의 풍토에 거부감이 있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보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 음식의 매력은 늘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평가절하한 곳에 있었다.
한국근대경제를 경인해 온 대구는 훌륭한 근대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도 근대시기 탄생한 음식들이 바로 매력의 중심이다. 대구라는 거대한 상권도시에서 탄생하여 전국화된 배경을 가진 음식들이 탄생했다. 따로국밥, 소피국, 막창, 생고기, 납작만두, 빨간떡복이, 찜갈비, 닭똥집 등 헤아릴 수 없다.
전주의 '비빔밥' 평양과 함흥의 '냉면', 개성의 탕반(湯飯)이 조선의 3대 음식으로 알려져있지만 '대구탕반(大邱湯飯)'의 중요성은 무시되어왔다. '대구탕반은' 백과사전에도 소개되어있으며 1929년 발행된 한국의 근대잡지 '별건곤(別乾坤)'에서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제목으로 '대구탕반'이 소개되어있다.
속칭 '대구탕'은 개고기를 소재로 한 '대구탕반' 명물 음식임을 소개하고 있으며 탕에 들어가는 고기가 다양해져 소, 닭이 사용되면서 육개장 등의 이름으로 발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소피국, 따로국밥, 돼지국밥도 대구탕반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근대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니는 국물도 없다'라는 경상도 방언에서도 우리는 맛과 멋이 함께 어우러진 대구의 음식문화사를 엿볼 수 있다. 음식의 맛은 그 음식이 탄생된 땅의 문화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 진다. '대구맛의 재발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동시장 먹거리골목을 개척한 아줌마들의 메뉴들이 황금어장이며 서문시장 칼국수 골목의 좁디좁은 곳에서 즐기는 '건진 국수'와 '누른국수'는 일품인 것이다. 도축장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뒷고기에서 유행한 막창도 하루저녁 수만명을 먹여주는 소중한 음식이며 전국 유일의 납작만두는 대구근대 음식의 '스타'와도 같은 존재다.
◆문화컨텐츠로 변모되는 대구 먹거리
2006년 대구시에서 대구의 명물음식을 '대구십미(大邱十味)'로 지정해 알리려는 노력은 좋은 시도라 할 수 있다. 몇 일전 1년간의 '대구맛의 재발견'과정에서 탄생한 도 대구의 음식문화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은 시도라 할 수 있다.
'맛집'열풍에 빠져있는 도시민들에게는 '맛집탐방기' 혹은 '맛집검증기'등이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 입맛과 메뉴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은 대구 명물먹거리골목이 형성된 배경, 독특한 식습관, 주변의 볼거리를 함께 다룸으로써 관광'문화컨텐츠가 되었다.
500년 전 대구의 명승지를 읊은 시 '대구10경'과 대구의 맛을 소개하는 '대구10미'를 결합시켜 진행하는 대구식후경 투어프로그램은 500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도시민들에게 즐거운 '식후경'을 제공할 것이다.
◆ 조사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들
# 하나-교동시장박사할매들
교동시장에서 박사할매로 불리는 인정많은 조순용(69)씨는 대구토백이로 노점에서 떡을 팔아 자식들 대학까지 보낸 교동먹자골목의 개척자다. 이곳 저곳 참견을 많이 하시고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박사할매'로 불린다.
서울순대 이은주(69) 할매는 간판도 없이 순대를 팔았다. 하루는 남자 손님이 찾아와서 할머니에게 '왜 아내와 싸우게 만드느냐'대뜸 물었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물어보니, 손님의 아내가 입덧이 심해 가서 교동시장의 '서울순대 좀 사온나' 해서 왔는데 간판이 없어 빈손으로 왔다고 아내랑 대판 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서울순대'라는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둘-안지랭이양념곱창골목 억류사건
2006년 12월 안지랭이 양념곱창골목에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촬영을 나갔다. 한쪽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진작가와 조사요원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중간 쯤으로 와보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곱창골목의 상인들이 촬영을 하지 마라고 사진기를 빼앗으려하고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나왔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라는 명물먹거리골목 가이드북을 제작 중에 있다고 해도 믿질 않았다. 결국 한 상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억류비슷하게 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이해를 못해 결국 대구시청에서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해줘 해결하게 되었다. 미리 연락을 하지 못하고 간 것도 사건을 비화시킨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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