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보이스 피싱' 설치는 한국 사회

개인정보 빼내 전화사기 자행…사회신뢰 저하로 경쟁력 상실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이라는 이름도 생경한 사기 수법이 갑자기 한국 사회에 난무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은 음성(voice)과 개인정보(private data) 낚시(fishing)를 합성한 단어로 불법적으로 빼낸 개인정보를 이용해 전화로 사기행위를 자행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현금인출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비롯해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전화사기행위를 조심하라는 안내장를 보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보이스 피싱 범죄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하는 보이스 피싱의 피해 신고건수는 올 1월까지 1천606건에 이르렀다. 월평균 약 200건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2, 3월 사이 2개월 동안 800건이나 증가해 월평균 400건으로 2배 정도 급증했다.

이처럼 보이스 피싱이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갈수록 그 수법이 진화하고 있고 중국과 대만의 국제적인 범죄조직까지 연루되어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법원, 검찰, 국민연금공단, 은행 등과 같은 공공기관을 사칭하거나 친족 납치를 가장해 돈을 입금하게 하는 수법에서 나아가, 개인의 신용정보를 입수해 사기 치는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은 그 생경한 용어가 보여주듯이 새로운 범죄 현상이다. 보이스 피싱을 통해 우리는 새삼 사회변화에 따라 새로운 범죄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기 행위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범죄 행위이지만, 보이스 피싱은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사기행각이다. 무엇보다 정보화의 허점을 파고들어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내고 이를 범죄행위에 악용한다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은 정보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몰래카메라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 비해 개인 사생활이 무방비로 노출되는가 하면, 정보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위해 개개인이 제출하는 개인 정보가 쉽게 유출되어 범죄행위에 활용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그저 법률상의 선언적 조문에 그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덧붙여 보이스 피싱이 난무하는 데에 중국과 대만의 범죄조직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범죄의 세계화 현상을 드러낸다. 날이 갈수록 범죄의 세계화는 보편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범죄조직의 네트워크는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국제적인 범죄조직이 연계되는 범죄현상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정보화가 범죄조직의 네크워크 범위를 크게 확장해 놓았기 때문에 범죄에 대응하는 시각 또한 확대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은 또다른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사회적 신뢰의 급격한 저하 현상이다. 이미 어떤 공공기관은 업무수행을 위해 전화를 걸어도 일반 국민들이 그 전화를 잘 믿지 않기 때문에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신뢰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간주하는 최근의 사회학계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신뢰가 높은 사회는 사회적 거래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믿음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래에 잡다한 증빙서류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회적 신뢰가 급격하게 저하되면 사회적 거래에 따른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사회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에 비해 사회적 신뢰가 낮다고 평가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보이스 피싱이 범람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정보화와 세계화와 같은 새로운 사회흐름은 일상적인 생활 장면에 그대로 침투해 들어온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단순히 구호나 용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은 살아있는 실체로서 일상생활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범죄 영역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보이스 피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보화와 세계화가 범죄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범죄행위에 대처하는 경찰이나 사법당국이라면 누구보다도 사회 흐름의 변화를 빨리 읽어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범죄행위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새로운 사회흐름을 면밀하게 읽어내지 못한다면 범죄예방은 한갓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보이스 피싱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범죄행위에 대응하는 사법당국의 수준이 한걸음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백승대(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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