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낮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칭다오맥주 공장. 인도네시아에서 IT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이스하디 씨가 칭다오맥주 공장 내에 있는 맥주박물관을 부지런히 살피고 있었다.
"1903년 설립된 이래 주인이 3번 바뀌고도 여전히 생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봤습니다. 저도 기업을 하고 있지만, 장수하는 기업을 만들어보고픈 생각은 모든 기업인들의 공통 소망입니다. 그래서 바이어를 만나러 중국에 온 길에 시간을 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보니 기업이 어떻게 하면 장수할 수 있을지, 조금은 알 듯합니다. 칭다오맥주가 제 회사가 장수하는 데 조금이나마 힌트를 줄 것 같습니다."
◆세계 기업 칭다오맥주
중국이 개방정책을 통해 글로벌 경제무대에 데뷔한 지 불과 20여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칭다오맥주는 이미 '세계적 브랜드'가 됐다. 우리나라 대형소매점에 가도 칭다오맥주를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브랜드 인지도에서 자리를 잡았다.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세계 8위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
근로자 숫자는 2만 6천 명. 근로자 숫자로 따지면 중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다. 본사가 있는 칭다오 시내에만 4곳 등 중국내에 모두 48곳의 생산공장이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454만t의 맥주를 생산, 117억 위안(약 1조 4천여 억 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생산량 가운데 상당 부분은 세계 50여 개국으로 수출한다. 칭다오맥주의 수요자가 전 세계 사람들인 만큼 이 회사 복도에는 수출대상지에 맞게 만들어진 50여 개의 광고간판이 걸려 있다.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상장됐고, 기업가치의 상승과 함께 주가도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100년 기업 되기까지
중국 산둥성 칭다오는 19세기 말 열강의 중국 침략기에 독일에 조차(租借)됐다. 이곳에 들어온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실 맥주가 필요했고, 맥주공장을 만들었다. 1903년의 일이었다.
서구 열강에 이어 동북아 패권을 차지한 일본이 독일을 밀어내고 1916년부터 이 공장을 손아귀에 넣었다. 일본 역시 품질 좋은 맥주를 만들었던 이 공장을 폐쇄시키지 않고 존속시켰다. 그리고 1945년까지 일본이 이 공장을 경영했다.
1945년 패망과 함께 일본이 물러났다. 이 회사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큰 위기를 맞았다. 중국내 내전 상황이 확산되면서 엄청나게 물가가 올라버렸고, 맥주 수요가 급감했던 것. 하지만 이 회사는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수요 감소에 대응했고,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을 맞이했다.
공산혁명 이후에도 중국 당국은 이 회사를 없앨 수 없었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품질에 도달, 대단한 규모의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성심(誠心)이 생명
이 회사 사람들은 정성스런 마음(誠心)이 없고는 오늘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칭다오의 명산인 노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고집하면서 최대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잡냄새가 없고 뒷맛이 깨끗하다고 이곳 사람들은 말했다. 결국 중국내전, 공산혁명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이 회사는 간판을 굳게 지켰다.
이 공장내 박물관을 보면 깨진 맥주병을 이용, 벽돌을 만들고, 맥주를 만들고 남은 보리를 돼지사료로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환경 경영을 해왔다는 것.
이 회사는 장사도 잘하지만, 전통을 지켜온 만큼 최근엔 중국내 대표적 '산업 관광지'가 됐다고 자랑했다. 발상지인 칭다오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 2003년 이 회사는 4천만 위안(약 48억 원)을 투자, 칭다오시내 공장에 박물관을 만들었고, 중국내 최초의 공업관광시범지구가 됐다. 하루 평균 국내외 2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칭다오시의 관광수입을 늘려주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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