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광기와 천재

광기와 천재/고명섭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가장 심하게 아버지에게 도전해서 매일 그에 상응하게 매 맞은 사람이 오빠였다. 아버지는 그의 당돌함을 고치려고 심한 매질을 가하고, 공무원 직업을 선택하도록 강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히틀러 여동생 파울라의 증언이다. 카프카의 아버지처럼 히틀러의 아버지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집안에서 어떤 반항도 허용하지 않는 전제군주였고 폭군이었다. 아들을 초죽음이 될 정도로 채찍질하는가 하면 아내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초등학교 시절 히틀러는 우수한 학생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실업학교 1학년 때 낙제해 진급을 하지 못했다. 영재가 한순간에 백치가 된 것만 같았다. 히틀러는 뒷날 '나의 투쟁'에서 아버지에게 저항하느라 공부를 팽개쳤다고 말했다. 그는 관리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천재들의 광기는 늘 드라마틱하다. 한 세계를 깨어 부숴버리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그 솟아오르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스테판 츠바이크의 '천재와 광기'의 제목을 뒤바꿔 붙인 이 책은 광기와 천재를 실마리로 '인간'을 얘기하고 있다. 광기가 없다면 천재도 없고, 천재가 아니었다면 광기도 의미없는 것이다.

히틀러의 광기는 '부성살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어머니의 애정을 놓고 경쟁하던 남동생이 죽으면서 생긴 죄의식 등 억압된 심리기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광기는 내적 열정과 외적 갈등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면서 피치못해 생겨나는 것이다. 그 내면에서 이글거리는 뜨거운 불을 정치적, 문학적, 철학적 풍경으로 나눠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적 풍경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러시아의 불온한 혁명가 세르게이 네차예프, 나폴레옹의 참모였던 조제프 푸셰를 그리고 있다. 네차예프는 혁명을 꿈꾸었지만, 음모와 사기, 공갈, 복수의 화신, 피에 굶주린 범죄자로 혁명의 정사에서는 잊혀진 인물이다. 푸셰 또한 '정치적 동물'로 대의를 품은 건전한 혁명가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였다.

문학적 풍경에서는 장-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를 다루고, 철학적 풍경에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미셸 푸코를 탐색했다.

카프카에서는 변신의 욕망, 헤어날 길 없는 진공의 수렁속에 빠져드는 자의 공포, 그리고 절망을, 소세키에서는 불만과 불안에 떨면서 낯선 문학의 세계로 항해한 모험을, 비트겐슈타인에서는 한 점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고 부실한 자신과 혹독한 싸움을, 푸코에서는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전혀 도덕적이지 않았던 모든 권위의 상징을 깨부순 자유에 가까운 광기를 건져 올렸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대푯값을 지닌 인물들이다. 모두가 누구의 아들이었고, 누구의 아내였고, 누구의 아버지였다. 지구 끝 절벽의 한계에 선 그들의 광기 또한 인간의 대푯값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인간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와 '천재'를 실마리로 인간의 열정적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는 "천재는 광기 안에서 솟아오르며, 광기는 천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며 "광기는 한계체험까지 자신을 몰고갔던 내적인 충동의 다른 말"이라고 했다. 지은이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식의 발견-한국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담론의 발견-상상력과 마주보는 150편의 책읽기' 와 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 알을 삼키다' 등을 낸 바 있다. 404쪽. 1만 6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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