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조차도 제대로 비치지 않는 구석진 골목의 남루한 단칸방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길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녹이 슨 대문은 삐걱거리며 쇳소리를 냈고, 방 앞의 형광등은 스위치가 고장 난 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쉬이 짐작게 했다.
5년 전 남편과 헤어진 김명순(가명·39·여) 씨는 초교 6학년과 2학년인 딸, 아들과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세 식구가 발을 뻗기에도 좁아 보이는 사글셋방. 장판 곳곳이 울룩불룩했고 모서리 벽지에는 퍼렇고도 검은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 씨는 "장마철에 빗물이 스며든 흔적"이라며 "비가 오면 집이 쓰러져버릴 것 같다."고 서글픈 웃음을 던졌다. .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 씨의 왼쪽 팔뚝에는 성인 남자의 5배나 될 만한 기다란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그 혈관 위로 투박하게 새겨진 굳은살은 이틀에 한 번씩, 8년 동안이나 주삿바늘을 꽂아 생긴 상처였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팔베개 한번 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팔달시장에서 속옷가게를 했었어요.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는 바람에 헤어졌지요. 장사를 계속 했지만 여자 혼자 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납품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빚을 내 150만 원씩 월세를 내왔던 가게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씨는 6천만 원이 넘는 빚을 지면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전락했다. 정부 지원금 80만 원을 받지만 그 중 70여만 원은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식당에서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물건 하나 제대로 들어올릴 수 없는 몹쓸 팔 때문에 1시간 만에 쫓겨난 적도 있다고 했다.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방 안의 불을 끄고 아이들과 집에 없는 척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는 아이가 구멍이 숭숭 뚫린 양말을 신고 있지 뭐예요. 아이들 옷 한 벌 제대로 입히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게 저한테 화가 난 것인지, 이 세상에 화가 난 것인지…. 그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죽을 듯이 울었던 거 같아요."
김 씨는 임대아파트를 신청했지만 세 번이나 떨어졌다. 또 신청해볼 거란다. 그녀는 찌는 듯한 여름날에 벌써 겨울 추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난방비가 비싸 몇 년째 보일러도 때지 못하고 있다면서. 김 씨는 또 까만 피부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혈액투석을 계속하면서 색소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랬다. 또 동사무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전해오는 쌀, 반찬으로 입에 풀칠한다고 했다.
"저는 콩팥 하나만 기증받아 수술을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벌써 다섯 번이나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교복이라도 사주려면 빨리 수술을 받고 어서 사람구실을 해야 하는데."
그는 수술비 1천만 원이 없다고 했다. "저 메모판은 뭐냐."고 묻자 "작은아들이 엄마가 어디 나갈 때는 꼭 메모를 남겨야 한다고 만든 물건"이라고 했다. 혹시나 엄마가 자신들을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방 한쪽에 걸어둔 달력 위에는 혼자 망치질을 하다 실패한 못 구멍 수십 개가 초라하게 뚫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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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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