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의 특성상 우리 병원엔 만성퇴행성질환 환자가 많이 온다. 수술하기엔 적응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픈 것을 참을 수 없는 환자에게는 우선 통증을 완화하는 것만이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통증이란 게 더 큰 위험을 방지해 몸을 보호하고자 생겨난 것이나, 어느 순간 고장난 알람시계같이 계속 울려대는 통증에는 통증치료 자체가 큰 치료행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통증을 잡는 의사로서(뭐 그렇다고 잘 한다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참 회의가 많다. 의사의 사명이란 모름지기 생명을 살리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일진대, 시인이 시는 쓰지 않고 신변잡기를 쓰는 것처럼 의사가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고작 반복되는 통증만 잡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것은 어쩌랴. 어쩌면 시인이 매문하는 것과 같아서 일찍이 의사일을 작폐해야 마땅한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의사의 사소한 갈등을 어찌 환자에게 전가하리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묻는 환자에겐, 산에 불이 났을 때 일단 불을 꺼야지요, 그리고 불이 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조심하고 잘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불 껐다고 다시 산불이 안 나랴.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산불예방책은 산의 나무를 다 베어버리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다 베어버리면 그게 어디 산이냐고, 마찬가지로 사람이 활동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무리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디 생업에 종사하는 환자에게 안정이 쉬운가. 부지런히 일해야 치료할 돈이 생기지 않겠냐고 속으로 코웃음칠지도 모르는 환자에 대해서 내 능력이 부족하다 싶어 자책감에 빠지다가도 뭐, '꿩 잡는 게 매'아니겠냐고 나를 착하게 설득해본다.
"아이고, 내 병 다 나으면 의사들은 뭘 먹고 살겠노."하는 할머니 말씀 들으면 '애고, 우리 할매들 병 다 낫게 하면 진짜 내 굶어죽는 것 아이가'하는 즐거운 걱정도 하고, "내 병 다 고치면 조선천지의 환자들 이 병원에 다 몰려올끼다."하는 할머니 때문에 혹시 문전성시로 병원문짝 다 부서지는 게 아닐까 황당한 기대도 해보면서, 오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란다 하질 않은가. 내 하루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통증이 통증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내 노력 또한 허사는 아니리라.
조현열(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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