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에 있는 어느 聖堂(성당) 벽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주기도문'(문구는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같다)을 놓고 기도와는 모순된 삶을 사는 인간의 세속적 삶을 역설적으로 빗댄 글이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아라. 사실은 하늘 생각보다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말아라. 저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말아라. 하느님의 아들, 딸다운 신앙적 삶을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 하지 말아라. 제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말아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고 있으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만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말아라. 죽을 때까지 먹고 남을 양식을 쌓아 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하지 말아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서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악을 보거나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각자의 종교 양식대로 기도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우루과이 성당의 역설적 비판처럼 입과 행동이 모순된 기도를 하며 살아간다. 탈레반의 인질사태도 그러한 말로 바치는 코란의 기도와 세속적 행동 간의 二重(이중)적 모순을 드러낸 경우다.
성경에서의 주기도문처럼 마호메트의 코란 경전에도 기도문이 있다. '파티하'로 불리는 제1장이 바로 이슬람교도들이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가장 자주, 많이 입에 올리는 기도문에 해당한다.
'자비로우시고 善(선)하신 하느님의 이름이여, 온 우주의 이름으로 찬미합니다. 세계의 주인이시며 자비로운 선인이시니 심판날의 주권자이시라….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사 당신이 축복을 베풀었던 이들의 삶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소서, 당신의 분노도 우리의 방황도 피할 수 있게 인도하소서, 아멘.'
그러나 무고한 이방인들을 인질로 잡아 목숨을 흥정하며 무참하게 죽이는 그들 탈레반식 기도문을 비유해 우루과이 성당에 써붙인다면 이렇게 씌어질지 모른다.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사'라고 하지 말아라. 저들끼리 악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
'당신의 분노도 우리의 방황도 피할 수 있게 인도하소서'라고 하지 말아라. 알라신과 세계인의 양심을 분노케 하고 폭력적 이단아로 국제사회에 외롭게 방황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
지금 상황으로는 무슬림의 신앙심이나 코란의 권능으로는 이미 정치적 이해의 늪에 빠져버린 탈레반 지도부에게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이미 그들은 스스로 알라를 향한 기도문을 저버리는 이중적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그들은 돈으로도 협상이 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십일조'와 달리 순수입의 40분지 1만 교회에 낸다. 또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거나 장애우를 돕는 선행 같은 것도 희사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소득이 없거나 가난한 자도 희생과 정신적 희사로 대신 때움으로써 돈 없는 소외감이나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탈레반에게 돈은 협상의 유용한 무기가 못 되는 이유의 하나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반미나 테러를 인정하자는 건 아니지만 부시 쪽이 먼저 '진정한 기도'로써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와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기도나 교환 불가 같은 눈에는 눈 식의 정치력만으로는 결코 우리 인질들을 구해낼 수 없어서다. 神(신)은 어느 쪽이든 일치되고 진실된 기도를 하는 자를 도와주신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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