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장으로 묶인 목차 중, 4번째 챕터의 제목은 '미술관을 등지고, 부피와 충격으로 승부 건 옥외 예술'이다. '스텐 허드'의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도판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다시 옮긴 것이다. 그리고 '20만 평 도화지에 트랙터를 붓 삼아'라는 카피가 들어온다.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이 그림의 감상 포인트는 첫째, 66만 7천㎡(약 20만 1천 평)의 광활한 농경지조차 캔버스로 '활용'될 수 있다! 둘째, 수만 그루의 수목과 화초, 그리고 경운기와 트랙터가 붓과 물감을 대신 할 수 있다! 셋째, 관람하려면 약 600m 상공에서 그림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줄 경비행기에 필히 탑승해야 한다. 넷째, 마지막으로…'예술,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 1960년대 이후 이 같은 대지미술(Earts Work)이 부상하는데, 여기 소개된 작업은 특히 농작물 미술(Crop Art)이라 불린답니다."
음, 책을 끼고 혼자 끄덕끄덕 거리며 미술관을 가지 않고도 작업실안에서 미술관의 문턱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심한 폭서로부터 '나를 절단하는' 방식을 찾다가 붓 대신 책을 든다. 옷 입지 않고 껄렁한 태도를 취하고, 게으름을 누릴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또한 생각해 보라. 무슨 '새빨간 고백'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모호함과 난해함이 대중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게 요즘의 미술이다. 나 또한 그럴 때가 있다. 이를 쉽고 재치있게 풀어낸 책이 있다. 최근의 미술 경향이 반영된 작품을 골라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 의미를 뚝뚝 던지는 미술 에세이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 그것이다.
길지 않은 문장과 여백, 풍부한 화보는 책장 넘기는 속도를 조절케 한다. 비주얼의 시대에 다양한 비주얼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장르에 따라 현재 작가의 작품과 그 작품에 영향을 준 과거 작품을 동시에 편집해 놓아 일반인들도 다가가기 쉽게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미학적 수사나 부각하며 호들갑스럽게 상찬하여 독자를 기죽이지 않는다. 패러디나 사회 비판적인 예술 거품을 허무는 가벼운 예술에 해설을 더한다. 현대 미술의 특징은 무엇인지, 어떻게 예술작품을 읽을 것인지 알려 준다. 이 순간만큼은 폭염의 습도도 나를 늙게 하지는 않는다.
권기철(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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