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100일이 된 아기는 숨을 쉴 때마다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냈다. 힘겨운 숨소리는 거칠고 둔탁했다. 아기는 한 번의 호흡에도 온몸이 들썩일 만큼 작고 가냘펐다. 중국 선양 출신의 조선족 엄마가 마흔에 낳은 아기. 엄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를 언제까지 지켜보게 될지 가슴을 졸이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다가구주택 작은 방에서 아기 지윤이와 그의 아버지 박태진(38·가명) 씨를 만났다. 지윤이의 보금자리는 보증금 없는 월세 15만 원의 단칸방. 천장에는 곰인형 모빌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들어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 등등. 집안 곳곳에는 힘겹고 고통스런 삶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지윤이에게 항문이 없다는 사실을 태어난 지 이틀이나 지난 뒤에 알게 됐지요. 병원에서는 아기의 배가 자꾸 부풀어오르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급하게 큰 병원으로 옮겼는데 이미 배설물이 몸속에 퍼져 심장과 폐까지 차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고 어린 것이 말도 못하고 그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박 씨는 3년 전 조선족 이복이(가명·40) 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5년 동안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던 어머니에게 며느리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이 씨의 여리고 착한 심성이 마음에 꼭 들었다. 하지만 긴 세월 투병비를 대느라 박 씨는 이미 신용불량자 처지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받게 된 보험금과 부의금은 믿고 맡겼던 사람이 모두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박 씨는 14세 때부터 직물공장, 자동차부품 회사, 택시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24년 동안 번 돈은 모두 어머니의 병원비로 들어갔고 오히려 이리저리 빚만 떠안게 된 형편이었다.
"지윤이는 저에게 희망처럼 나타났지요. 하염없이 길고 구질구질한 터널 속에서 환한 빛이 들어오듯 그렇게요. 아프다는 현실만 잊어버리면 저렇게 작고 예쁜데….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아비로서 염치없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항문이 없는 지윤이는 왼쪽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채워놓았다. 배설물과 가스는 그 호스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한 뼘 크기도 안 되는 배설물 봉투는 10개 들이가 10만 원이 넘고, 400g밖에 되지 않는 특수분유값은 9천 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박 씨는 화물차 운전으로 하루벌이를 하고 있다. 화물차 운전도 한 달에 열흘도 채우기가 힘든 실정. 게다가 박 씨는 젊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도 되지 않는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내와 전화통화를 합니다. 혹시나 저 없이 아픈 지윤이를 돌보다 우울증이라도 앓게 될까봐, 늘 내가 옆에서 당신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려고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진 지금, 제 실낱 같은 희망은 아내와 지윤이뿐인데 또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거든요."
박 씨는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에 서른 번도 넘게 양치질을 한다. 지윤이를 만지고, 안고, 뽀뽀를 하려면 비누칠을 하고 양치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나둘 떠나간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그 몹쓸 것들을 깨끗이 지워야만 지윤이를 살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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