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 명절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다. 당시 많은 아버지들처럼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기에 서울에 사는 아들의 새 아파트에 와서는 춤이라도 추실 듯이 그토록 즐거워하시다가 며칠 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6·25 전쟁터에서 인민군의 포로가 되고 몸에 총알이 박히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아까운 청춘을 이데올로기 전쟁의 제물로 바치셨다. 그리고 전쟁보다 더 무서운 가난과 싸우면서 여섯 남매를 키워내고 인생의 낙을 누릴 사이도 없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또 어떠했는가. 일제 강점의 고통 속에서 빼앗긴 나라를 찾아줄 위인을 기다리며 살다 가셨다. 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자 세계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세계가 식민지와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던 제국주의 시대에는 싸움(?) 잘하는 지도자를 원했고, 제국주의가 끝난 후 냉전시대에는 정치력과 그럴듯한 이념으로 국민들의 자존심과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주는 정치적 지도자를 원했었다.
이념과 냉전의 장벽이 무너진 후에 세계는 정치보다 경제적인 부유함을 안겨주는 지도자를 원했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된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21세기 지도자들의 고민이며 화두였고, 그 답은 자연스럽게 문화예술로 귀결됐다.
우리 부모들의 시대는 먹고 입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고, 나의 시대에는 남보다 조금 더 잘먹고 잘입고 잘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우리 다음에 온 지금 이 시대는 남보다 더 잘먹고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사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전에는 막연히 좋은 것을 찾았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찾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할지를 몰라서 술이나 고스톱으로 밤을 새우던 것이 지금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좋아하는 공연이나 스포츠를 즐기고 미술관이나 영화관을 찾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긴다.
바야흐로 선택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자기의 감각이나 취향에 따라 사는 것을 사치라고 여기지 않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직접적인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스포츠와 정치까지도 막연한 다수의 대중을 위한 것보다는 사람마다의 개성이나 취향까지 배려한 구체적이고도 수준높은 예술적 감각을 가진 것들을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의 많은 지도자나 학자들이나 CEO들이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면에서 예술적인 감각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박명기(대구문화예술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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