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 사각' 다문화 가정] (상)말이 통해야…

"나보다도 한국말 못하는 엄마가 부끄러워요"

▲ 경북 김천시 아포시립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2세인 지원(가명·5·여), 수희(가명·4·여)가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 경북 김천시 아포시립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2세인 지원(가명·5·여), 수희(가명·4·여)가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관심없고, 어머니는 한국말을 못하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자녀들까지 제때 말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언어장벽이 자녀들의 교육장벽으로 이어져 학습저하, 정서장애 등 심각한 부작용을 빚고 있다. 기획탐사팀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방치되는 아이들…

"또래 애들보다 말이 무척 느려요."

구미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김진옥(53·여) 씨는 "보통 두 살쯤 되면 엄마, 아빠 소리를 곧잘 하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아이들이 말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상주시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섯 살 난 지만이(가명)는 또래들에 비해 말하는 게 유독 느리다. 기자가 "밥 먹었어?"라고 몇 차례 물어도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이 없다. 김모(28·여) 교사는 "지금은 나아졌지만 6개월 전 처음 왔을 때는 할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기만 했다."며 "또래 애들과는 달리 간단한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해 가르치기 힘들었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의 언어 장벽이 자녀들의 언어발달 장애와 학습저조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민숙 김천시 개령시립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들 교육은 부모, 특히 엄마의 지도가 꼭 필요하다. 어릴 때 부모가 제대로 된 교육을 자녀들에게 못하면 많게는 또래들보다 3년 정도의 학습 저조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구미의 한 초교에 다니는 진수(가명·8)는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만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 부모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진수는 "친구들이 엄마 이름이 이상하다고 늘 놀린다. 나보다 말을 못하는 엄마가 부끄럽다."고 했다. 어머니의 언어장애가 아이들의 정서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경우다.

사공준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아이들의 지능·정서 발달은 보고 듣는 외부자극에 의해 좌우된다. 사회와 원만한 교감을 하지 못하면 지능·정서적으로 장애를 겪을 수 있다."며 "훗날 이들의 빈곤과 교육부재가 범죄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경북지역 경우 최저생계비(4인 기준·월 120만 5천 원) 이하를 버는 가정이 42%나 됐고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199만 원을 버는 가정이 37%로 가장 많았다. 또 여성 결혼이민자의 51% 정도가 직업을 갖고 있어 아이들의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높은 이혼율도 아이들의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또다른 원인이다. 경북에는 2004년 75건, 2005년 117건, 2006년 228건으로 해마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매년 2배 가까이 느는 추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출까지 포함하면 가정 붕괴현상은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민여성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아이들은 말이 잘 되지 않아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고 집안에서는 가정폭력, 무관심에 시달리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배우고 싶어도 여건이 안돼

그렇다면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어 교육 실태는 어떨까?

구미 해평면의 베트남 출신 쩡티휴인란(23) 씨는 일주일에 3번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 다니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면 가정불화가 생기고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선배 이주여성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다."며 "세 살난 딸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결혼이주여성들은 공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영천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여성(23)은 "시집온 지 3년이 넘었지만 한글교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남편과 시어머니가 집밖에 나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부인이 행여 달아날까 두려워 아예 외출을 막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구 달성군의 한글교실에는 이주여성 30여 명이 등록돼 있지만 실제 출석하는 이는 5, 6명에 불과했다. 한글교실 교사인 채명식(55·현풍초교 교감) 씨는 "맞벌이,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불신 등 이런저런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성이 너무 많다."고 했다. 경북의 결혼이민자 3천469명 중 한국어교육 참여경험이 한 차례도 없다고 응답한 여성도 57%(1천968명)에 달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다문화가정이란?

우리와 다른 민족·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때 '혼혈인 가정' '이중 문화가정' '코시안(코리안+아시안)' 등 여러 용어로 불렸으나 국적에 따른 차별성, 다양한 문화의 공존성 등을 이유로 지난해부터 교육인적자원부에 의해 '다문화가정'으로 통일됐다. 최근에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 가족,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이주남성 가족, 이주민 가족(이주노동자, 유학생, 북한이탈주민 등)까지 포함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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