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에게도 '쌈지공원' 만들어주세요

자투리땅에서 휴식 공간으로 "확 달라진 동네 살 맛 납니다"

'우리 동네를 바꿔주세요!'

차량 두 대가 지나치기도 어려운 좁은 골목길,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버려진 자투리땅, 주인없는 땅이라며 동네주민들이 채소밭으로 활용하면서 겨울이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던 곳들이 속속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쌈지공원' 덕분이다.

대규모택지개발로 조성된 대구시 달서구나 북구의 대단위 아파트단지 주변에는 월광수변공원이나 이곡분수공원, 함지근린공원 등 근린공원과 소공원들이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옛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중구와 서구, 남구 등의 주거밀집지역의 사정은 다르다. 공원으로 개발할 만한 땅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당한 규모의 근린소공원을 조성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쌈지공원이었다. 말 그대로 '쌈지'처럼 작은 자투리공간을 공원으로 만들어 주거밀집지역의 허파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동네가 참 많이 달라졌어요. (녹지공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작은 공간 하나만으로도 우리 동네가 좋아진 느낌이 들어 사는 맛이 납니다."(장병진·70·대구시 서구 상리동))

지난 24일 오후 대구시 서구 상리동 세방골의 한 쌈지공원. 찐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던 주민들은 "여름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와 더위를 피하느라 일찍 나오지 않으면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구청에서는 여기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공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일부 주민들이 채소밭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무를 심고 놀이터 시설을 설치하고 휴식시설인 퍼걸러까지 만들었다. 서대구공단 입구에 조성한 소공원은 교차로 주변이라서 주변 행인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쌈지공원은 서구뿐만 아니라 대구시 전역에 조성되고 있다. 건들바위 건너편 자투리땅에 조성된 쌈지공원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규모에 비해 쌈지공원의 활용도와 조경효과가 높자 요즘은 지역주민들이 공공용지로 묶인 자투리땅을 찾아 녹지로 만들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땅만 확보되면 쌈지공원 조성하는 데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1995년 이후 50여 곳의 쌈지공원을 조성한 대구시 서구의 경우, 총 소요예산은 5억여 원에 불과하다. 1곳당 1천만 원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청 관계자는 "녹지공간 부족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아 민원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다가 시유지와 구유지 등 공공부지조사를 시작했다."면서 "도로가 개설되면서 기존 도로부지 등 자투리땅이 많아 이를 쌈지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쌈지공원이 서구에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골목형 주거형태가 많은 주거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중구와 남구도 쌈지공원조성에 적극적이다.

내년 말까지 44억 원을 들여 동성로를 대구를 상징하는 관광테마거리로 조성하기로 한 대구시도 동성로의 자투리공간 2곳에 쌈지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하긴 쌈지공원을 만드는 것은 규모의 경제학 때문이다. 땅값 상승 등으로 공원부지 확보가 어려운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투리땅을 활용, 부족한 녹지공간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자투리땅에 대한 다른 활용방안이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일석삼조'가 기대되는 쌈지공원 조성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집안 분위기도 화분 하나를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쌈지공원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동네풍경이 달라졌다. '녹색올림픽'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 베이징시당국은 베이징시 면적의 45%를 녹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베이징 도심 곳곳에도 쌈지공원이 들어서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쌈지공원 조성의 걸림돌은?

쌈지공원을 조성하는데는 적잖은 문제가 있다. 부지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길 곳곳의 자투리땅이더라도 모두 공공부지는 아니다. 공유지와 사유지가 혼재돼있는 경우도 흔하다. 자치단체에서 공원조성을 위해 매입을 하려고할 때 토지소유자가 높은 보상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쌈지공원 외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도 토지소유자가 매도를 거부하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 때는 방법이 없다. 또한 재개발과 도로개설 등으로 발생하는 자투리공간이 매년 크게 늘어나지도 않는다.

도시조경전문가들은 골목길이 많은 대구의 도심환경에는 쌈지공원 조성이 녹지공간 확보의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도심재개발사업 등 도심공간 전체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명수기자

▶ 전문가 의견은?

쌈지공원은 재개발이 어려운 주거밀집지역에 녹지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이다. 박찬용(영남대 조경학과) 교수는 "대구는 주변지역이 분지로 되어있어서 다른 도시에 비해 외곽지역에 녹지가 많고 도심에도 2·28공원과 국채보상공원, 경상감영공원 등이 잘 조화돼있다."면서도 "도심과 외곽사이의 주거지역에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근린공원과 소공원, 쌈지공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실제로 땅값이 비싸서 이들 지역에 근린공원을 조성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사정에 따라 공공부지를 중심으로 소공원과 쌈지공원이라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성된 공원들은 인접한 공공부지나 기존 공원과 네트워킹(연결성)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시간대에 이용할 수 있는 복합적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어린이공원이라고 해서 어린이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말이다.

박 교수는 "대구 서구 등 일부지역에서는 공원용도로 써야할 공공부지에 노인회관이나 동사무소 등이 들어서는 일이 잦다."고 지적하고 "가급적 확보된 녹지공간은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도시의 허파가 살아있게 된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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