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가을 하늘에 살포시 물드는 나뭇잎에도 가을 정취는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억새풀 하나에도 가슴이 설레는 낭만의 계절, 마치 붉게 타는 저 깊은 산속 잡목들의 반란처럼 분명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쳐주는 풍요로운 계절이 바로 가을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평소 애상적이거나 낭만적인 성격도 아니고 아름다움과 연민의 정에는 더욱더 무딘 편이지만, 그래도 이 서정적인 계절에 남들 다 가는 단풍여행 흉내라도 내려고 주말에 식구와 함께 불타는 듯한 오색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절경을 맞으러 나섰다.
이 도로는 개통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 소백산 자락의 정기가 산등을 타고 그대로 푸른 계곡에 녹아든 아름다운 산속 길이다.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크게 붐비지 않는 고요한 도로였다.
생각한 대로 층층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산에는 참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가 한껏 고운 자태로 물들고, 그 틈새 푸른 소나무가 군데군데 섞여 미적 감각을 한층 고조시켜 주고 있었다. 차가 달리면 달릴수록 나타나는 명산의 모습, 이름난 화가의 절묘한 이미지로도 스케치할 수 없는 절경과 맵시에 감흥되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소백산 산허리를 감도는 울긋불긋한 단풍, 높고 낮은 산자락이 언뜻 보기에는 이마를 맞대고 고속국도를 품에 얼싸 안은 듯하고, 형형색색의 기암절벽을 따라 펼쳐지는 가을 풍경이 '여기가 제일의 가을 경치이다' 라는 듯한 표정으로 저마다 화려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말로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조물주의 영감에 매료되어 나는 잠시나마 도심에 찌든 때를 훨훨 털어낸 듯 한결 마음이 개운함을 느꼈다. 동행한 식구도 첩첩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미감과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그리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보랏빛 들국화에 마음을 빼앗긴 듯 감상에 젖은 모습이다.
경치가 수려하면 쉽게 자연미에 동화되고 심취하는 미적인 존재가 사람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희끗희끗한 바위에 매달린 붉은 단풍들이 눈앞에 또 펼쳐지고 있었다. 선산에서 충주까지 이어지는 평화로운 중부내륙고속국도를 달리며 삶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사람 산다는 게 다 그런 것이지, 어디 별난 것이 있겠는가! 분수에 맞게 분주히 살다 보면 단풍처럼 행복하게 저물어 갈 날도 찾아오는 것이지….' 욕심 없이 천 년을 묵묵히 흐르고 있는 낙동강처럼 그렇게 흐르다가 그렇게 사라져가는 삶의 형상이 가을산과 오버랩되곤 했다.
장식환(시조시인·영진전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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