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行(일행) 소묘
윤금초
화닥화닥 그물은 밤 인경마저 스러졌다.
빗장도 깊이 물린 영묘한 그 新房(신방)인 거.
해묵힌 사랑 조아려 차마 말을 삼가고.
티 하나도 사려 앉는 새 세간의 귀밑머리.
반호장 앞섶 가린 紅玉(홍옥)의 그대 안면.
실눈썹 살풋이 열려 내 온몸을 적시고.
묘한 작품입니다. 굳이 각 장마다 마침표를 찍은 것은 제목이 암시하는 '一行(일행)'의 의미를 부각하려는 의도지요. 한 줄 한 줄이 다 강한 독립성을 가지면서 시조의 3장 구조에 조응하는 데서 이 작품은 나름의 실험성을 획득합니다.
전통 혼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심상들을 통해 사랑의 열망과 교감을 드러냅니다. 마치 꼰사와 푼사가 교직하는 수틀을 마주한 느낌이랄까요. '차마 말을 삼가고', '티 하나도 사려 앉는', '앞섶 가린' 같은 표현들이 한껏 고조된 신방의 긴장을 엿보게 합니다.
인경마저 스러져 간 밤. 처녀 적 귀밑머리를 풀어 쪽을 찐 신부는 이제 한 지아비를 맞습니다. '반호장(반회장) 앞섶 가린 홍옥'의 신부. 진정한 아리따움은 부끄러움에서 나옵니다. 가는 눈썹이 떨리는 듯 열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暗轉(암전). 華燭(화촉)의 불은 꺼지고, 빗장만 깊은 洞房(동방).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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