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신발끈을 질끈 조여 매고 있다.
31일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0년만에 한때 800원대로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기업들은 "환율 하락세가 지속돼 최악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700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는데다 고유가까지 이어지면 이익을 최대한 지키는 '비상경영'이 아니라 기업도산을 막아내야하는 '생존경영' 체제에 돌입해야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죽겠습니다"
한해 100억 원 가량을 수출하는 대구 성서공단의 섬유업체 A사. 이 회사 대표 B씨는 요즘 저녁 모임에 나가 동종 업체 사장들을 만나면 숨이 턱턱 막힌다고 했다.
"한달전만 해도 업체 사장들의 내년 원·달러 환율 전망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도 800원대 중반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며칠전에 만나니까 모두들 700원 대를 각오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700원 대로는 이익이 남지 않아 수출 오더를 받아올 수 없어요. 내년엔 죽느냐, 사느냐를 걱정해야합니다."
올해 환율 전망치를 930원 정도로 봤다가 최근 900원까지 깨지면서 벌써 수억 원의 환차손을 봤다는 B씨는 일단 내년 환율을 850원 대로 보고 수출 오더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850원 이하로 내려가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는 것.
특히 섬유업체들은 환율하락에다 유가인상까지 겹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석유화학원료를 이용해 만드는 화섬원사 가격이 30%가량 오른 것은 물론, 면 원재료까지 유가인상에 따른 운송비 상승 여파로 크게 상승했다는 것.
연간 45억 원 상당을 미국에 수출하는 섬유업체인 C사 대표 D씨는 "일단 내년 환율목표를 880원으로 잡아놨는데 환율하락 추세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업계 전체에서 환율 여파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 또는 도산사태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업체는 환헤지를 잘해놔 사정은 나은 편이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차부품업체인 에스엘 김희진 상무는 "2012년까지 984원에 환헤지를 해놔 큰 부담은 없는 편이지만 환율하락세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벨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 즉 예를 들어 기존에 10mm짜리 제품을 8mm로 설계해 원가를 줄이는 등 설계에서부터 최대한 원가절감을 해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 떨어질까?
31일 우리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6.30원 급락한 900.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1997년 8월26일 900.50원 이후 10년2개월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날 환율은 전날 종가 수준인 907.0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지만 장초반부터 매도세가 급증하면서 901원선으로 급락한 뒤 공방을 벌였다.
오후들어 901~902원선에서 등락하던 환율은 매도세가 강화되자 오후 1시52분쯤 900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899.60원까지 저점을 낮췄다.
환율이 장중 800원대로 떨어진 것은 97년 8월28일 이후 10년2개월만에 처음이다. 이후 환율은 당국이 달러화 매수 개입 강도를 높이면서 902원선으로 올라서기도 했지만 매물이 유입되자 900원선으로 되밀렸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의 금리인하를 앞두고 달러화 매도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장중 한 때 환율 900원이 깨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달러약세가 이어지는데다 국제유가까지 오름세를 타고 있어 달러 약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다수 지역 기업들이 내년 환율을 800원대로 내려잡고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부 이영호 차장은 "내년 환율이 800원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아직도 환위험 회피를 위해 환변동보험에 가입하는 대구경북지역 수출업체는 전체의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
그는 "환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만큼 기업들은 환위험 회피수단 개발에 나서야하고, 너무나 기본적인 얘기지만 원가절감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배가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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