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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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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될 수 없었던 조선의 성종을 두고 사학자 김덕일은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세월은 아직 열두 살의 어린 그의 편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한명회를 비롯한 늙은 공신들과 그의 어머니의 힘을, 정상적으로는 임금이 될 수 없었던 그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희망은 바로 세월이었다는 말이다. 기다리면 공신들은 늙고 죽을 것이고 자신은 장성할 것임을 아는 현명함이 새나라 조선의 틀을 완성시킨 임금으로 서게 했다고 평했다.

조선 말 60년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막을 연 김조순에게는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을 묻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에는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적 동지이자 후원자였던 정조의 급서 이후 영조의 어린 왕비 정순왕후를 주축으로 한 노론벽파의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은인자중의 성품 덕이었고 팔도의 최고 실권자로서 천수를 다한 것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현명함 덕택이었다는 평가다.

어느 날 김조순의 집앞에 만취한 이가 찾아와 욕설을 퍼부었다. 하인들이 몽둥이질을 하려들자 그가 말렸다. 사연이나 듣자고 불러들이자 취한 이가 갑자기 숨졌다. 사연이 있었다. 김조순을 몰아내려는 이들이 병들어 곧 죽을 사람에게 술을 먹여 욕을 하게 했다. 매질을 한다면 죄 없는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대통령 후보 선출대회에서는 기다릴 줄 몰랐던 과거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풍경이 빚어졌다. 결과에 불복하고 뛰쳐나온 잘못 때문에 10년이나 고통을 받았다며 이제는 이 꼬리표를 떼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표를 먹고 사는 선출직에겐 인간적 고민이 있다. 남보다 내가 더 낫고 훌륭하다는 말을 스스로 해야 한다. 사람으로서는 민망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아예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이도 있다. 유권자는 이중적이다. 그런 아픔을 알면서도 어느 대목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현명함이 필요한 대목이다.

문턱에서 두 번이나 낙마했던 분이 다시 거명되면서 찬반 양론이 뜨겁다. 회한과 기대, 아쉬움이 없지 않을 터다. 그렇다면 과거 실패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유권자의 표를 실어 날라 줄 세월의 배는 과연 누구에게 닻을 내릴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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