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혼 10년 "이래서 행복해요"

◇ 가장 큰 선물은 자녀

부부들마다 10년을 함께 지내며 작건 크건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때로는 심한 말다툼 끝에 '누가 이기나 보자'며 며칠씩 말 한마디 없이 지내기도 하고, 최소한 몇 번쯤은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한 쪽이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싸움이 끝나기도 하지만 서로 눈치 보며 화해 무드 조성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항상 그럴듯한 '빌미'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자녀다.

임신과 첫 출산의 감동, 뜻도 없는 옹알이를 들으면서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던 기억, 아기가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마침내 일어서서 한두 걸음 떼기까지의 극적인 드라마, 말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며 커가는 성장의 모습들. 때로는 자지러질 듯 울음을 그치지 않아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일, 또래들과 놀다가 다쳐서 가슴 철렁했던 일, 잔뜩 꾸지람을 듣고 난 뒤에도 엄마 품에 찾아들어와 서럽게 우는 모습도 추억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첫 아이의 입학, 소풍, 운동회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는 삶의 일부다.

◇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시기

결혼하면 효자가 된다지만 아이를 낳고나면 다시 불효자가 되고 만다. 제 자식 좋은 옷 입히고,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구경 시켜줄 것만 알았지 자식 섬기는 마음의 100분의 1만 해도 효자 소리 듣는 줄은 모르고 산다. 그래도 조금씩이나 철이 들어 다행이다. 제 자식 무릎 까져서 울면서 돌아왔을 때, 고열로 숨소리 쌕쌕거리며 잠조차 제대로 못들 때, 비싼 장난감 안사준다고 바닥에 엎어져 온갖 생떼를 쓸 때, 그리고 가끔 철없이 떠드는 말이지만 가슴 한 켠에 못으로 박힐 때, 그제서야 부모의 마음을 100만분의 1쯤 알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 가겠다고 다짐해놓고도 제 식구끼리만 달랑 떠나는 게, 그게 아직 철이 덜 든 결혼 10년차다.

◇ 자기를 발견하는 시기

세상에서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잘 난 줄 알았다. 남들만큼 돈도 못 벌어오는 남편을 원망하고, 늘 돈타령만 해대는 아내를 돈벌레라고 속으로 욕했다. 가끔 잘했건 못했건 내 편 들어주며 '그래, 힘들겠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늘 교과서만 읊어대는 남편이 미웠고, 별의별 소소한 것까지 다 기억해가며 주저리주저리 욕하고 떠들어대는 아내가 철없어 보였다. 그러는 새 10년이 흘렀다. 아비를 그리고 어미를 쏙 빼닮은 자식을 보며 새삼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TV에 머리를 쳐 박으면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모르는 남편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고, 하루 종일 있었던 자질구래한 일들을 한없이 쫑알대는 딸을 보며 아내만 수다쟁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본다. 결벽증 환자, 성격 파탄자, 이기주의자로 몰아부쳤던 내가, 나 역시 그렇게 비춰졌음을 이제서야 알게 된다.

◇ 마음을 열면 작은 감동이 줄줄이

아침도 먹는둥마는둥 새벽같이 일을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텅빈 거실 한 켠에 앉아 울어본 적 없을까? 늦은 저녁, 그 좋아하는 드라마조차 다 못보고 소파에 쓰러져 잠든 아내의 거칠어진 발을 마사지할 때 가슴 한 구석 먹먹해진 적 없을까? 늘 먹는 밥이며 반찬을 차려놓고도 남편이 "야! 이거 정말 맛있네."라고 한마디 건넬 때 피곤함이 싹 씻겨나가는 느낌 가져본 적 없을까? 어느 날 오랜 만에 가사 일 도와주겠다며 빨래를 갤 때, 낡다못해 구멍이 생기려는 아내의 속옷을 보고 미안한 마음 생긴 적 없을까? 몇 푼 안되는 월급으로 생활비에 아이 학원비, 부모님 용돈, 남편 보약까지 챙겨먹이는 마술같은 살림살이를 보며 가끔 고개를 갸우뚱한 적 없을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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