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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수생→사업가' 스리랑카 출신 아누바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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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희망을 키워갑니다."

아누바마(37·스리랑카) 씨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전화기는 밤낮없이 울려댔다. 한밤중에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결코 귀찮아하지 않는다.

"얼마나 답답하면 새벽에 전화를 걸겠어요." 대부분은 한국생활이 서툰 스리랑카 노동자들이다. 아픈데 어디 갈지 몰라, 체불임금을 못 받아, 돈을 송금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사연은 갖가지다.

15년째 한국생활에 접어든 아누바마 씨. 지금은 원단과 중고컴퓨터를 수출해 연 3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됐지만, 그도 산업연수생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을 때는 그들과 똑같았다. 그는 무뚝뚝한 겉모습과는 달리 스리랑카 출신들의 '큰 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1994년 대학 졸업 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지만, 외국인 산업연수생에게 돌아온 건 질시와 불평등이었다. 대구의 한 염색공장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으나 사장과 동료의 욕설과 폭행에 1년 만에 공장을 뛰쳐나왔고 불법체류자가 됐다.

악착같이 한국어를 배웠다. 처음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전화카드, 식료품 등을 팔면서 한국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는 스리랑카 근로자들이 늘기 시작하자 1990년대 후반 대구에서 스리랑카 공동체를 결성했다. 지금은 매년 4월 전국의 스리랑카 출신들이 대구에 모여 큰 축제를 열 정도로 모임이 확대됐다. 그는 지난 2004년 쓰나미(지진해일)로 폐허가 된 스리랑카 함반토타에 대구시민 성금으로 '대구랑카 교육센터(2006년 4월 개소)'를 건립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북구 검단동에 있다. 최근 일거리가 많아져 자동차를 3대로 늘렸고, 직원 2명을 채용했다. 그는 "번 돈의 일부를 스리랑카 노동자를 위해 쓰고 있는데 좀 더 벌어야 한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올해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스리랑카 국민들을 위해 휠체어 기증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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