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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의 시와 함께] 나팔꽃이 피는 데는 얼마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 박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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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은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반 사이에 핀다 나팔꽃이 피는 데는 얼마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이제 나팔꽃은 하나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나팔 불지는 않는다 그때 스무 살의 나에게 쓸데없이 연애 경험 있느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팔꽃은 아침 일찍 피어 내 어린 날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동네방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크게 나팔 불어 소문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 나팔꽃은 햇빛과는 상관없이 어둠 속에서 핀 꽃이다 어둠 속에서 네가 본 것이 무어니? 너의 어둠은 무엇이었니? 더욱 또록또록해진 눈을 뜬 아침의 나팔꽃에게 이제는 내가 나직이 물을 차례다

"내가 씻어버린 어둠이/커튼 속에는/숨어 있다./……/커튼으로 가린/내 비밀이/하늘에 가서/바람과 섞이고/빛에 섞인다.//부끄러운 그 말 한마디도/구름이 되어/둥둥 떠간다"라고 노래한 시인.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춘기를 거친 모양이다. 술 단지의 누룩이 부풀듯 몸이 부풀고 비밀이 부푸는 시기가 사춘기다.

숨기고 싶은 어둠을 동네방네 크게 나팔 불어 소문을 내던 나팔꽃. 사사건건 내 삶을 간섭하며 밝은 쪽으로 내몰았던 나팔꽃. 그러나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는 것.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나팔꽃이 두렵지 않다. 더 이상 시선의 압력을 느끼지 않는다.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줄 알고 거기 가지 않"았던 금기, 오늘 햇빛 속에 내다 말린다. 속곳처럼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활씬 벗어버린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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