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은퇴 교수님이 두분 계시다. 한분은 내과 교수님이고 다른 분은 흉부외과 교수님이다. 내과 교수님은 자주 "임 선생, 뇌가 어떻게 생겼노? 만져보면 순두부같이 물렁물렁하나?"라고 묻곤 하셨다. 흉부외과 교수님은 내가 수술하는 방에 들어오셔서 "또 까나? 남의 머리라고 그렇게 자주 까도 되나?"라고 농담조로 말씀하시곤 했다. 나도 그분이 수술하는 방에 가끔 들어가서 수술 중인 심장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는 그 벌떡거리는 심장을 만져보고 싶은 유혹으로 내 심장도 함께 뛰곤 했었다.
살아있는 뇌는 순두부같이 물렁물렁하지는 않다. 유연하지만 약간은 딱딱한 느낌을 준다. 지주막(蜘蛛膜)과 연막(軟膜)으로 덮인 뇌 표면은 단단한 껍질을 벗겨낸 호두같이 회(回)와 구(溝)로 들쑥날쑥하다. 뇌는 밖에서 오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판단해 몸이 반응하도록 한다. 특히나 슬픔, 사랑, 미워하는 것, 성적인 것 등등의 감정은 변연계(邊緣係)라는 뇌간(腦幹) 상부를 둘러싼 뇌 조직에서 주관한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대부분 가슴이나 심장과 연계돼 있다.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말이 있고, 심장의 모양을 본떠서 사랑을 표시하고 있다. 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뇌인데 표현은 가슴과 심장에 연계하여 표시되는가?
태어나서 처음 안기는 품은 어머니나 간호사의 가슴이다. 힘들어 눈물을 흘릴 때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운다. 그때 느꼈던 포근함, 만약에 태어난 어린아이도, 슬퍼하는 이들도 머리로 포근하게 감싸서 안았다면 머리가 포근한 사람이란 단어가 생겼을 것이고, 사랑의 표시도 뇌 모양이나 변연계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뇌는 아마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중하고 신비한 것일 것이다. 그러한 뇌를 만져볼 허가를 받은 나는 분명 신의 은총을 받은 몸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자꾸 나는 벌떡거리는 심장을 만져보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아마 자꾸만 사라져가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자와, 사자의 용기를 닮은 듯한 젊은이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른다.
올해에도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수련의가 없다고 한다. 몇 년 뒤 누가 상한 심장과 병든 허파를 치료해 줄 것이며, 누가 그런 아픈 심장과 허파를 가진 자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아 줄 것인가?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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