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장인이 대목장이라면, 소목장은 나무 세간을 만드는 목수다. 청도 매전면에는 전통목가구로 이름난 소목장 이재도(52)씨의 공방이 있다.
공방이라 해봤자 나무가 쌓여있는 집 앞마당이 전부다. 이름이 알려졌다 싶으면 그럴듯한 공방부터 짓는 요즘 공예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소목장 이씨의 손은 대팻밥처럼 거칠다. 30여년을 전통목가구에 바친 장인 답게 그의 손은 성한 구석 없이 옹이 졌다.
마을에서 '장인'으로 통하는 그는 재료를 고르는 일부터 마무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전통 방식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인이다. 기자가 찾은 그날도 그는 '반년 농사'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지난해 9월 만들기 시작한 반닫이에 막바지 작업에 해당하는 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스승이 사용하던 100년 넘은 전통도구로 기계적 작업 하나 없이 모두 손으로 다듬는다. 하루 8~10시간, 수개월 작업해야 비로소 한작품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마철엔 습도가 높아 작업을 못해요. 그러니 1년에 두, 세 작품 만들기도 어렵죠." 제대로 된 작품을 위해서 한 작품의 기름칠에만 5년 넘는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장인의 혼'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장인에게 "참 잘 만들었다"는 말은 모욕이나 다름없다. "얼마냐"고 묻는 것은 더 더욱 참을 수 없다.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평생 해온 작업이 정교한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까. 기능은 20%에 불과해요. 나머지 80%는 정신입니다. 전통에 대한 이해, 작품에 대한 책임, 장인의 고집 등이 어우러져 작품이 탄생하는 거죠."
전통에 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마추어적인 얕은 지식은 오히려 전통 이해에 독이 된다. 반면'정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요즘 주거방식의 변화로 전통목가구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한옥과 달리 인공난방을 하는 아파트에선 목가구들이 한달 만에 갈라지고 비틀어져요. 백년이 넘은 목가구들도 아파트에서 비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선비정신이 깃든 사랑방 가구를 특히 좋아한다. 단순한 디자인에 선비의 문기(文氣)가 흐르는 책장, 선비정신에서 비롯된 비례와 분할은 현대가구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다. 선비의 이상과 장인의 기능이 어우러져 탄생한 것이 전통목가구라는 것.
하지만 그 기운이 끊어질까 두렵다. "300~500년 된 느티나무가 고사(枯死)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무늬를 얻을 수 있어요. 이 무늬는 추상화 같기도 하고, 한 폭의 한국화 같기도 하죠. 그런데 요즘은 나무들이 많지가 않아요. 게다가 전통을 이으려는 젊은이들은 더욱 보기 어렵죠. 목가구를 만들기 위해선 오래 사용해 길이 잘 든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조차 없을 거예요."
스승에게 물려받은 손때묻은 연장을 어루만지는 그의 옆얼굴이 쓸쓸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일손을 놓을 수 없다. 장인의 꼿꼿한 자존심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꿈이다.
"나만의 창의성이 깃든 '이재도식 청도반닫이'를 만들고 싶어요. 강화반닫이, 밀양반닫이 처럼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통이 될 수 있는 명품 말이죠."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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