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국제 밀 가격이 22%나 올랐다. 유례 없는 일이다. 곡물가격이 춤추듯이 오르고 있다. 우려하던 식량위기가 온 것인가?
다양한 분석과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곡물수출 규제에 나섰다. 자국 소비용 곡물 부족이 우려되는 판에 수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수출규제에 가세했다. 무역자유화만 되면,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먹을거리는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식량수입국인 이집트, 파키스탄 등은 이미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약간의 공급 감소에도 가격이 폭등한다. 세계는 바야흐로 곡물가격 인상이 주도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에 빠져있다. 현 상황을 "가축이 곡물을 빼앗아가고, 자동차가 곡물을 먹어치운다"고 비유한다. 중국을 포함한 개도국의 경제성장이 고기 소비를 증가시켰다. 단백질 1kg을 생산하는 데 곡물은 약 7~8kg이나 소비되기 때문이다. 치솟는 유가는 바이오에너지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은 2006년도 옥수수 생산량의 20%인 5천500만t을 에탄올 생산에 썼다. 브라질은 2007년도에 사탕수수로 에탄올 175억ℓ를 생산했다.
세계 곡물 재고율은 2000년도 30%에서 지난해에는 15%로 하락했다. 세계적 식량위기 상황이 발생하였고, 지구상의 기아인구는 8억명이나 된다. 식량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세계 식량의 날 행사의 주제를 '농업투자와 식량안보'로 결정했다. 식량안보를 위해 농업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7년도에는 '식량권'(The Right of Food)이 주제였다. 식량안보 개념을 능가하는 식량권으로의 개념 확대는 위기적 식량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식량권이란 식량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권이다. 식량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식량권은 자선에서 권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런 점에서 식량권은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의 개념에 근접한다. 식량주권은 소비자가 자신의 식량을 선택할 권리(식량권)와 각 나라가 자국의 식량정책을 주권국가로서 추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정부가 식량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 권리를 실행할 의무를 가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정한 자급률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한 생산기반을 갖추어야 하며, 그래도 부족한 식량은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 등이 국가가 해야 할 의무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식량주권은 국내외의 농업인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중요한 사실은 자유무역의 주창자인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FAO와 함께 무역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에는 시장 기능이 아닌 '비교역적 관심사항'(Non Trade Concerns)이 존재하므로 자유무역이 불가하다는 것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다. 자유무역의 신봉자인 국제기구에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산물 수입국인 우리로서는 대단히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위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식량자급률 목표치의 법제화를 이루어야 한다. 2001년도에 개정된 '농업·농촌기본법' 제6조는 식량자급 수준의 목표치 설정을, 제42조는 '농업·농촌발전기본계획' 수립 시 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자급률 목표치 설정을 법적으로 명시해 놓은 지 7년이나 지났음에도 법제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일본은 이미 2000년도에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였다.
둘째, 지역생산·지역소비 시스템을 구축하여 우리 농산물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 최근 친환경농산물의 학교급식 재료 공급을 의무화한 지자체가 늘어나는 점은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확대를 위한 좋은 사례가 된다.
셋째, 유휴농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식량자급률 28%에 불과한 나라에서 겨울철에 약 100만ha의 농경지가 방치되고 있다. 보리, 밀, 호밀, 귀리 등 겨울철 식량작물 재배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지원이 시급하다.
넷째, 농업진흥지역의 확대 혹은 현 수준 유지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진흥지역의 전용에 대비하여 타 지자체와 개발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농업진흥지역 총량제를 추진해야 한다.
석태문(대구경북연구원 지역활성화연구실장·농업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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