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손자휴대폰은 수신거부 중'

벚꽃소식은 아직 감감한데도 완연한 봄 날씨다. 공원이나 못가, 유원지에는 손자를 봤을 법한 중노년 어른들의 한가한 나들이 모습도 부쩍 늘었다. 오가는 대화도 총선과 공천 얘기에다 몸 아픈 얘기 빼고 나면 손자손녀 얘기가 절반의 절반쯤은 될 것 같다. 정치판 시시비비를 입씨름해보는 재미도 호사 거리지만 손자 얘기는 누가 꺼내놔도 너나없이 금세 한속이 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깐깐한 유태인들 속담에도 '한명의 손자는 세명의 자식보다 더 귀엽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祖孫(조손)간의 맹목적인 사랑은 동서와 고금에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요즘 손자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조손文化(문화)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화 단절의 사례부터 들어보자. 어느 60초반 의사할아버지가 초교 5년짜리 손자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늘 받던 전화가 그날은 무슨 일인지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수업 중인가 해서 저녁에 다시 걸어도 불통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놀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가 전화를 안 받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 "아무 일 없는데요. 지금 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온종일 전화를 안 받냐?" 아들이 손자 녀석에게 자초지종 전화 불통 사유를 캐물어 보니 할아버지 전화번호만 수신거부로 등록해놨다는 것이었다. 아들 내외가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이미 할아버지 가슴 속에는 대못까지는 아니라도 바늘 하나만큼은 박혀버렸다. 그러나 그 의사는 먹물 든 지식인답게 곧장 사태를 파악했다.

첫째, 손자 녀석 휴대폰 대화 고객들은 할아버지 빼고는 모두 다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를 신선한 단어와 어휘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둘째, 할아버지 대화는 규제와 과잉보호에 의한 간섭, 신나기는커녕 짜증만 나게 하는 올드 레퍼토리란 점이다. "오늘은 공부 많이 했느냐? 해로운 인스턴트음식 조심해라. 횡단보도 잘 보고 건너거라. 학원 빼먹지 말거라…."

저네 세대가 쓰는 어휘나 언어도 아니다. 수신하고 싶지 않은 정보만 계속 낡은 부호로 쏟아져 들어오는 메시지가 싫다는 뜻이다. 일일이 골라 끄기도 귀찮아 아예 수신거부로 조작해 버린 손자의 대응은 일종의 溺愛(익애)로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 퇴직 여교장 할머니가 서울 사는 네살짜리 손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걸 때마다 "예. 예" 한두마디 건성 응대하고는 제 엄마한테 바꿔줘버렸다. 할머니는 밥 먹었냐 뭐 하냐 두어마디 묻고 나면 수화기에서 손녀는 사라지고 며느리가 튀어나오니 서운할 수밖에. 민망해진 며느리가 할머니전화는 빨리 끊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을 시켰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며느리가 다그쳐둔 탓인지 용케도 그날은 몇마디 더 길게 대답을 했다. 귀여운 마음에 뭐든지 해주고 싶어진 할머니가 물었다. "○○야,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니?" 그러자 손녀가 대답했다. "전화 빨리 끊고 싶어요."

실화다. 한 집안에 3세대, 4세대가 살면서 엄마 회초리를 등 뒤로 막아주고 꿀엿이나 군밤 같은 안방 군것질거리를 배급해주면서 손자들에게 힘 있는 가부장적 존재로 인식되던 시절은 갔다. 효도를 들이대며 손자 사랑에 대한 앙증맞은 응답을 강요할 시대도 이미 아니다. 손자손녀와 좀 더 긴 전화라도 하고 싶다면 할아버지 쪽이 손자의 통신코드에 맞추는 길뿐이다.

우선 언어의 높이부터 맞춰야한다. 손자 녀석들이 즐겨보는 TV부터 눈여겨보면서 뽀로롱이나 방귀대장 뿡뿡이, 톰과 제리 스토리 정도는 몇 토막이라도 외워야 한다. 어른들 세계서도 야구나 골프나 농구선수 이름, 경기기록, 용어 몇마디라도 알아야 대화 자리에 끼어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자 사랑도 TV 봐가며 손자 수준에 맞춰가야 할아버지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됐다.

서운해하고 서글퍼할 게 아니다. 史劇(사극)드라마만 보지 말고 투니버스나 EBS TV도 챙겨보는 신세대 손자 사랑법도 한번쯤 익혀볼 만한 봄날이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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